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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콩대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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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Aug 29. 2024

개의 길

26. 영상 31도. 낮에는 매미가 운다. 밤에는 귀뚜라미가 운다.

  그곳을 지날 때면 매번 수십 마리의 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앉아서 무심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곳을 개의 길이라고 불렀다. 그 풍경은 언제나 매우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개들의 풍경. 그곳은 깊은 숲으로 가는 외길 중간쯤에 있었다.



  부서진 산에 둘러싸인 황량하고 넓은 도로 위로 거대한 검은 트럭과 함께, 나와 그가 탄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오토바이는 매번 사거리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한낮의 열기와 미세하게 느껴지는 오토바이 엔진의 떨림, 곁에 선 거대한 트럭으로 인해 흔들리는 몸, 그 모든 것으로 인해 피곤이 몰려올 즈음 그는 항상 좌회전을 했다. 그러면 불현듯 한적하고 좁은 외길이 나왔다. 그 길은 농작물이 사방에 드문드문 심겨 있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벌판 사이에 난 좁은 흙길이었다. 사방은 온통 밭이거나 거친 흙뿐이었다.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헬멧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거센 바람 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 그리고 가끔씩 그가 건네는 낯선 언어뿐이었다. 텅 빈 풍경이었다.


  개의 길은 그 길 중간쯤이었다.

  처음, 멀리서 볼 때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풍경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모습이 조금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 모두 개였다. 칠흑같이 까만 개, 흙의 색을 닮은 개, 황금 해처럼 누런 개. 덩치가 큰 개들이 길과 밭에 사방으로 흩어져 앉아 있었다. 수십 마리였다. 외길 오른편의 기울어져 가는 원두막에도 많은 개들이 앉아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들을 사람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개들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일절 미동이 없었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 했다. 길은 좁았다. 그는 그곳을 지나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이 개들은 모두 어디서 온 거지?" 나는 헬멧 안으로 밀려드는 거센 바람 소리로 인해 그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글쎄, 개가 정말 많네." 그의 낯선 언어가 헬멧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한 사람도 없어." 나는 수십 마리의 개들을 지나며 혼잣말을 했다. 그는 개들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개들을 유심히 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수십 마리의 개들은 모두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풍경이었다. 오토바이는 서행을 하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나는 무심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째서인지 난데없이, 언젠가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였다. 이상한 상상이었다.


  개의 길을 빠져나온 그는 다시 속도를 내어 외길을 달렸다. 오토바이가 외길을 달려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깊은 숲을 지나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오후가 되면 우리는 숲을 나왔다. 깊은 숲을 나와서 다시 마주하는 외길은 무슨 까닭인지 더 이상한 기분을 들게 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거칠고 빼곡한 수풀을 정신없이 빠져나오면 다시 외길을 마주했다. 무성한 나무숲을 나와 갑작스레 만나는 텅 빈 풍경이었다. 외길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그것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이상한 풍경이었다. 분명 많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할 정도로 텅 빈 풍경. 나는 숲을 빠져나와 그 텅 빈 풍경을 달릴 때마다 어떤 환상을 마주하는 감정을 느꼈다. 방금 전 깊은 숲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온 것이 꿈일까, 아니면 이 외길의 지극히 평범하고 텅 빈 풍경이 꿈일까. 그 모든 것은 내게 기이할 정도로 매번 낯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길 위로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 한 대만이 달려간다. 아무도 없다. 거대한 산에 둘러싸인 그와 나 둘뿐이다. 저 먼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바람 소리,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이 그곳에 가득 찰 뿐이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그도 집을 떠나 작은 도시로 왔다. 어찌 보면 그에게도 모든 것은 낯설었다. 그는 종종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걸었다. 내게 말을 거는 그의 등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숲이 느껴졌다. 큰 새만 머리 위로 날 뿐, 길에는 아무도 없다. 그의 목소리가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뒤엉켜 들려온다. 나는 거대한 산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강렬하게 파고드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텅 빈 풍경에 던져진 이방인의 외로움이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너무도 외로웠다.



  텅 빈 벌판에 내던져진 두 사람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로지른다.



  거대한 산과 텅 빈 벌판을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다시, 저 멀리 개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내게 작은 위안이었다. 개들이 길의 주인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들은 미동이 없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무심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무심하지만 냉담한 눈.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눈을 감고 그 길을 지난다면 그곳에 수십 마리의 개가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지 못할 만큼의 침묵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침묵이었다. 바람 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이 아득하게 들려온다.

  그는 그곳에서 언제나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우리는 그 길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곳은 개의 길이었다. 그 얼굴들만이, 그 길을 지나는 우리의 뒤를 쫓는다. 우리는 찰나의 풍경이 되어 개의 길을 지나간다. 멈춰 서고 다시 가기를 반복하며 조심스레 그 길을 지나간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무슨 까닭인지 또다시, 먼 훗날 어느 날엔가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였다.


  오토바이가 어렵사리 그곳을 빠져나오면 그는 다시 속도를 내어 힘차게 먼 길을 달렸다. 나는 그 길을 지나며 뒤를 돌아본다. 개들의 얼굴이 점차 멀어져 간다. 외로운 얼굴들이 일제히 멀어져 간다. 나는 그 꿈결 같은 길을 빠져나오며,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먼 훗날 분명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상상이다.


  오토바이를 탄 두 사람이 외길을 떠나 점차 멀리 사라져 간다.





'개의 길'은 2023년 <차예랑의, 글>에 실렸던 글입니다.


''개의 길'은 저에게 수필과 소설의 접경지 같은 글이자 항상 숙제와 같은 글입니다. 그곳은, 언젠가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집념과 부담 중에 만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들의 얼굴은 마치 제게 어떠한 소설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 개들의 얼굴은 제게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요.'

저는 아직도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오늘의 추천곡은 Dirk Maassen의 Voi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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