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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Nov 28. 2018

줄 수 있는 게 이 사랑 밖에 없다

준비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나는 내 앞가림을 착착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크고 작은 실수가 많고, 가끔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때에 나의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1인분의 몫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돌보겠느냐.” 맞는 말씀이다.


그렇게 부족한 내가, 그 부족함을 미처 다 메우지도 못한 채, 아버지가 되었다.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쑥쓰럽다. 그저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며 하루 하루가 새롭다. 아이를 키우며 인간관계를 다시 배우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의 부모를 깊이 이해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오늘 아침. 총총이는 자신을 깨우러 안방에 들어온 나에게 눈이 부시다며 “아빠. 문 닫고 나가.”하고 오만 짜증을 냈다. 이걸 확,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다. 그렇지만 나는 “눈 부셔? 더 자고 싶었어? 아빠 나갈게. 그런데 이쁘게 말해주세요.” 했다. 그러자 총총이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빠. 문 닫고 나가주세요.” 했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저 버르장머리를 당장에 고쳐놔야 하는데, 이렇게 오냐오냐 하며 키우다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새는 바가지 꼴이 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물이 새기는 새겠지, 그래도 사랑을 주는 방법은 알겠지.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은 알겠지.


고등학교 시절. 자습을 마치고 밤 늦게 들어온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를, 어머니는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나의 얼굴과 손, 발을 닦아주는 방법으로 깨우셨다. 얼굴에 닿았던 물기가 식으면서 시원하고 개운했다. 젖은 걸레를 내 얼굴에 던지며 “당장 쳐 일어나지 못해.” 하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이제 알겠다. 그건 사랑이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요즘 부쩍 이런 말이 머리에 맴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것은 사랑이다. 그만한 사랑을 받는 경험을 세상 또 어디에서 하겠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이다.) 그래서 부모 만이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랑이다. 제때 제대로 된 방식의 훈육과 교육도 모두 사랑이다.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이해하고 아이를 존중하는 것도 역시 사랑이다. 수도 없이 흔들리며 커나갈 아이는, 이 사랑의 경험을 무게추 삼아 중심을 잡아갈 것이다.


얼마 전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말라”라는 것이라고 썼다. 맞다. 어떤 부모도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모든 부모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 준비는 끝이 난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언정 그때부터는 아이의 부모이다. 부모의 역할이 시작된다.



이제 부모로서 준비가 끝나고 부모 노릇이 시작된 이들에게 한마디만 더 보태자면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라”고 하고 싶다. ‘이게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라고 하는 자기 위주의 거짓 사랑 말고,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가짜 사랑 말고, 때로는 부모 자신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고통을 짊어지고, 때로는 희생을 감내하는 진짜 사랑을.


그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분명 중심을 잃지 않고 커나갈 것이다. 마치 땅 깊숙이 내려진 굵은 뿌리 하나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모두 망가진 나무를 몇 번이고 다시 살려내듯이. 아이에게 단단히 뿌리 박힌 부모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실천하도록 이끌 것이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달리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싶다.




늦은 밤. 서울 어느 산부인과에서 아내 옆을 지키며 마음을 졸이고 있을 나의 친구와 새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모진 애를 쓰고 있는 친구의 아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썼다. 순산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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