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chpapa Feb 05. 2019

명절 보이콧 — 우리의 명절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알고 보면 훨씬 이전부터 엉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설 명절.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반가워야 마땅한데, 그다지 편하지가 않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다. 가급적 피하고 싶다.


왜? 좋았던 경험이 별로 없다.


어른, 특히 남자 어른 위주의 이벤트다. 남자 어른들이 발언권을 독점하고 말을 많이 한다.

많은 말에 실수가 따른다. 남자 어른들의 말실수에 누군가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보다 못한 여자 어른들이 나선다. 결국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명절 준비/뒷정리는 모두 여자 어른들의 몫이다. 몸이 힘드니 그 사이에서도 날이 선 말들이 오고 간단

어영부영 파한다. 실은 명절 때 빼고는 자주 만나지도 않는 사이이다.


이런 상황이니 ‘자식 세대’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명절 모임에 불참한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빠질 사람 빠지고 나면 결국 참석한 사람 혼자 모든 화살을 맞는 고약한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전 명절인 작년 한가위 때, ‘대체 이 명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반복해서 고민했던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이런 명절에는 다시는 참석하지 않겠다.’라고. 그런데 그 결심은 또 한 번 관성에 굴복하는 듯 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내가 명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결혼 이후’부터이다. 결혼 이전에는 ‘부모님 세대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심 ‘이러다 말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명백히 ‘방조’였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예전에야 자연스럽게 일손의 세대 교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삶의 모습은 얼마나 다양한가. 여전히 명절 준비는 큰어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의 몫이다. 어머니가 아프신 다음부터는 두 분께서 도맡아 하시고, 작은아버지가 가세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내 딴에는 어필을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실 분들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많지 않다. 그저 명절 가족 모임이 조금이나마 즐거웠으면 한다.


차례/제사 모두 없애고 외식으로 바꾸었으면 한다. 상 차리는 데 드는 비용/노동력을 고려하면 돈 문제는 아니다.

차례를 포기할 수 없다면, 차례상이라도 제발 간소화 했으면 좋겠다. 굳이 음식을 직접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돈으로 사는 정성도 정성이다.

돌아가신 조상님 챙길 시간에 옆에 있는 배우자, 낳아놓은 자손들이나 더 챙기시면 좋겠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그걸로 충분하다.


진리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 짤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결단이 필요하다. 예의를 갖춘 ‘간언’으론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해결될 것이었으면 이 지경이 되기 훨씬 전에 무슨 수가 났을 것이다. 답은 행동이다. 그에 따른 갈등은? 필연이다. 어차피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면 다수가 행복한 방향으로 가야한다. 다수가 행복할 수가 없다면 ‘나’라도 행복해야 한다.


명절 보이콧. 결코 완전한 해답일 수 없지만, 해결을 위한 실마리쯤은 되는 수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 키즈 존’, 아이 키우는 아빠의 솔직한 생각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