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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Jan 21. 2020

부디 이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세요

총총이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자주 먹는다. 부모로서 걱정이 없지 않다. 치아가 상할까 걱정이고 배가 아플까 걱정이고 비만이 될까 걱정이다. 가끔 감기에 걸리면 아이스크림 때문인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말귀를 알아먹을 나이가 되니 총총이도 아이스크림을 자주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긴 하겠지만 사 달라고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이스크림 먹기는 가족의 소소한 재미, 달콤한 이벤트로 남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계속 사주라는 남자.jpg]이라는 글을 보았다. 같은 내용이 글로 정리된 [남자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의 글도 있다. 내용은 이렇다:


야구 경기에서 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기로 약속한 아빠와 아이. 아빠는 경기에 진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지 않는다. 아이는 아빠에게 열심히 했으니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빠는 약속은 약속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이 부자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아빠에게 다가와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라며 차분히 얘기한다.


몰래카메라 상황이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주지 않으려는 아빠의 논리는 이렇다:

약속은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패배자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이건 인생의 진리다.

아이는 삶이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한다.


틀린 말이 없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의 교육방침에 이러쿵 저러쿵 간섭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삶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 그건 아이도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다.
(굳이 아빠까지 나서서 아이에게 비정한 승부의 세계를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아이에게 아빠가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어라. 그게 더 소중한 것이다.

아이에게 우리 아빠가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어라.


이것도 맞는 말이다. 결국,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후자의 말에 마음이 더 끌린다. 아빠와 아이를 지켜보던 남자다 한 말에는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왜 그럴까.


photo by Danielle MacInnes (unsplash)


이 글을 읽고,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총총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무소식이 희소식.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1) 총총이가 아프거나 (2) 총총이가 다른 친구를 아프게 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확률이 높다. 나는 몹시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오전 놀이를 끝내고 놀이감을 정리하는 시간.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함께 정리정돈을 하는데 총총이 혼자 계속 놀이를 했다. 놀이감 정리를 독려하기 위해 선생님은 정리를 잘 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칭찬해줬고 총총이의 이름은 불리지 못한 채 정리 시간이 끝나버렸다. 당황한 총총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이 울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전화는 어린이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니 혹시 집에서 총총이가 자신의 서운했던 감정을 표현하면 그걸 놓치지 말고 잘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전화를 끊고 우선 안도했다. 총총이가 아픈 것도 총총이가 다른 친구를 아프게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데 선생님은 왜 굳이 아빠인 나에게 전화를 하셨을까. 혹시 총총이의 마음이 상했을까봐 걱정을 하셨던 것은 아닐까.


나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겨우 만 3세가 된 총총이도 사회생활이 쉽진 않겠구나.’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과 함께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야 하는 생활.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그날 집에 돌아온 총총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도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냥 평소보다 총총이를 더 많이 안아줬다. 의식적으로 더 다정하고 더 따뜻하게 대했다.


다시, 아이스크림 이야기로 돌아가면, 아마 내가 저 상황 속 아빠였더라도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어야 할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약속 지키기. 일관성 가지기. 이건 육아에서 정말 필요한 덕목이다. 아이들은 화 내는 부모를 무서워 하는 게 아니라 언제 화낼지 모르는 부모를 무서워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너는 패배자”라느니 “패배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느니 하면서 상처 주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먹게 하면서 한 아이만 쏙 빼놓고 먹지 못하게 하는 치사한 짓거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못 이기는 척 아이스크림을 사 줄지도 모르겠다. 아빠인 나까지 빡빡하게 굴지 않더라도 세상은 이미 충분히 거칠고 힘드니까. 가족만큼은 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따뜻한 존재가 되어주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런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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