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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존중하는 아빠이고 싶다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에 관하여

연휴를 맞아 그간 내가 브런치에 써왔던 글을 모아서 읽어봤다. 마침 오은영 선생님 책도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육아의 틀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바로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였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을 존중하는 아빠이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기를 바란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출발점은 ‘다름’이다. 부모인 ‘나’와 ‘아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나와 아이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➋ 두 번째 의미는 나와 아이가 각각 어른과 아이로서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➊ 첫 번째 의미의 다름. 즉, 나와 아이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다른 존재라는 얘기는 아래 글에서 이미 썼다:

사람은 각기 다르다. 저마다의 기질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나와 다른 그 존재를 도무지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뜻대로 하려고 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주어진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노력이 곧 존중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과는 또 다른 나의 존재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관계는 없을 것이다.


➋ 두 번째 의미의 다름은 최근에야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말이다. 둘째는 첫째 때와 달리 수월하게 키운다는 얘기가 있다. 왜 그럴까. 육아에 대한 스킬과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일까. 그것도 맞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이를 제대로 존중하려면 ‘아이는 나와 다른 자아와 취향과 선택권을 가진 별개의 존재이다’ 정도의 선언적인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실천적인 지침으로 구체화되기 어렵다. 이러한 인식론적 토대 위에, 어른보다 작고 약하고 공격적인 존재인 ‘아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쌓여야 한다.


다시 말해,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를 완성하려면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의 아이에 대하여 그 기질, 특성, 특별함을 세심하게 살피려는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보편적 존재로서의 아이에 대한 발달단계적 특성, 적합한 의사소통 방식, 훈육 방법 등에 대하여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c) pixabay


한 예로, 오은영 선생님의 책을 보면, 부모는 아이에게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 권위의 한계를 분명히 정할 뿐이다. 물리적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금지된다. 안전한 방식의 훈육은 필요하다. 지침을 줄 때는 장황한 설명을 지양하고 간결하고 단호하게 한다. 막무가내 떼를 쓰면 안고 이동한다. 아이가 울면 섣불리 달래며 자극하기 보다는 그저 기다린다.


놀랍지 않은가.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라고 하면 마치 아이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고, 가급적 아이의 뜻에 따라주고, 어지간하면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고... 이렇게 아이에게 질질 끌려가는 방식을 의미할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법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이를 제대로 망치는(spoil) 방법이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고 하는 조던 B. 피터슨 교수는 “훈육 책임을 등한시하는 부모는 올바른 양육에 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한다. 잠깐 악당이 되기 싫어서 자녀를 영원한 고통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사회는 어떤 엄한 부모보다 비판적이고 매정하다.”라고 썼다(⟪12가지 인생의 법칙⟫, 200쪽).


부모에게는 훈육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어른으로서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그 훈육의 방법이 아이와 똑같이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기다림, 이해, 수용 때로는 무대응과 같이 어른이기에 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면 된다. 아이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른의 방법으로 너르게 아이를 품어주면 된다.


(c) pixabay


아이를 존중하기 위한 출발점인 ‘다름’의 두 가지 의미는 결국 하나의 목표에서 만난다. 그 목표는 아이가 자라면서 만나게 될 타인과 사회와 조화롭게 관계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훈육이 필요하다.


훈육에도 방법이 있다. 아이의 기질마다 발달단계마다 적합한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어른도 한때 아이였지만, 아이를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를 공부해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 ‘존중’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어서, 이 글에 자주 언급되는 오은영 선생님의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2016)를 읽고 쓴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chchpapa/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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