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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Jan 25. 2020

아이를 혼내지 않고 가르치기

오은영,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2016)를 읽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 프로그램을 몇 번 본 뒤로 ‘오은영’이란 이름 석 자 뒤에는 반드시 ‘선생님’을 붙이게 된다. 문제 있다는 아이 —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었지만 — 도 선생님을 만나면 눈에 띄게 달라지곤 했다. 말그대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 시쳇말로 ‘찐’ 전문가.


총총이가 태어나던 해. 오은영 선생님이 신간을 내셨다. 제목은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기다리며 읽기에는 너무나 실전적인 책이었다. 그때 사두었던 책을 총총이가 만 3세가 된 지금 꺼내 읽었다.



⟨총총아빠 다이어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브런치의 숨은 부제는 ⟨아빠의 반성문⟩이다. 우는 총총이에게 큰소리로 화내고 쓴 반성문, 총총이에게 정색하며 엄한 표정 지은 다음에 쓴 반성문, 바쁜 아침에 총총이를 다그치며 협박을 한 다음에 쓴 반성문이 여기에 적혀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욱하는 부모’에 해당한다. “애 키우면서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어?” 이런 하소연도 해보지만, 그게 잘못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욱’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어요?” 있을 거란 이 책을 기대감으로 읽었다. 왜냐하면, 오은영 선생님이 쓰신 책이니까. (오-멘!)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욱이 왜 나쁜가에 관한 개괄적 설명. 2부는 상황별 못 참는 아이를 대하는 법. 3부는 상황별 욱을 다스리는 방법. 4부는 아이를 욱하지 않는 어른으로 키우기 위한 방법.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목차를 보고 필요한 내용만 찾아 읽어도 좋게 구성되어 있다.


오-멘.


이 책을 읽으며 움찔(!) 했거나 뜨끔(!) 했거나 고개를 끄덕였던 문장들을 옮겨본다:

내가 욱하는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실은 내 안에 있다.

욱하고 후회하는 부모들을 보면 평소에는 아이한테 과도하게 잘한다. (뜨끔)

의존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든 배우자든 상대에게 ‘네가 나를 이해해야지,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면 네가 내 감정을 보호해 줘야지, 내가 위로가 필요하면 네가 위로를 제공해야지’라는 입장을 갖게 된다. 사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하는데, 그것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아이는 나 없이는 못 사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욱하는 것이다. (뜨끔)

많은 부모들은 가정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욱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많다.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려면, 그 경험을 시켜야 한다. 부모도 아이를 자극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부모는 무서워서는 안 된다. 부모가 무서우면 아이는 얼어버린다.

아이의 아주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에 대해서 어른이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아이는 감정 조절이나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지침을 배워 나간다.

화는 공감으로 줄어든다. 공감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상식의 선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공격적인 행동이 앞서는 아이한테 어른들은 “말로 해야지, 때리면 안 돼”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부모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말로 가르치지 못하고 자꾸 ‘공격’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가 한 공격적인 행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아니 어쩌면 더 문제가 많은 공격적인 행동일 뿐이다.

아이가 공격적인 것은 한창 감정이 발달해 가고 공격성이 발달해 가는 중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과정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모로서,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끈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안된 일이지만 허구의 센 척, 허구의 강함이다.

육아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덜 낸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화가 나고 욱한다면, 아이를 잡을 것이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에 이상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뜨끔)

아이가 악을 쓰면서 말대꾸를 해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말은 하고 살아야 하고, 말은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이가 입을 닫아 버리면 그다음부터는 가르칠 수가 없다.

예민한 아이에게 지침을 줄 때는 벽지를 바를 때 초배지를 바르고 벽지를 바르듯 해야 한다.

아이가 부모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타 다른 어른의 지도력도 인정하지 않는 큰 사태가 발생한다.

아이가 유독 어떠한 상황, 어떠한 특정 대상과 있을 때 문제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한다. 그래서 어른의 잘못이 보이면 인정하고, 진솔하게 의논하고, 해결안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아이가 바뀌어야 마땅해도 먼저 시도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은 교사다.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자세다.

강압적으로 감정을 빨리 멈추게 하는 것은 명백한 공격이다. 옳은 방법이 아니다.

감정은 스스로 정점을 찍고 스스로 내려 와야 조절 능력이 생긴다.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를 때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단호하게 한다고 무섭게 해서는 안 된다. 단호함에서 무서움을 빼려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에서 혼낸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아이들은 혼낼 존재가 아니라 가르쳐야 할 존재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거 봐, 그칠 거면서” 이런 말은 하지 말라. 그치면 그치는 대로 두어야 한다.

먹이고 재우는 것만큼 부모의 자존심을 걸게 하고, 죄책감을 자극하는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먹이는 것에 부모의 자존심을 걸면 아이도 안다. 자존심을 거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로 재우는 것으로 독립심을 발달시킬 필요는 없다. 독립심은 잠자는 것 말고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키워 줄 수 있다.

어릴 때 아이와 먹는 것으로 실랑이를 심하게 하면, 아이 성격이 나빠진다. 먹는 것으로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많은 일이다.

아이가 잘 못하는 것 같고 그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리고 밉다면, 부모인 나의 기준을 점검해 봐야 한다.

부모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도 아이와 나의 관계가 잘 분리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모습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생각한다면, 기본적으로 아이가 해낸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 줘야 한다.

훈육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욱하지 않는다. 화가 났다면, 아이를 때리고 있다면, ‘훈육’이라는 명칭만 붙였을 뿐이지 훈육이 아니다.

욱했다는 것은 본인의 감정 조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고, 자신의 문제를 축소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축소하는 것은, 결국 자기 행동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소리 지르지 마’라고 가르쳐야 한다. 예쁘게 말하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

부모로서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 묻지 말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

일을 하는데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거나, 아이와 온종일 함께 있지만 일하고 싶어서 너무 괴롭다면, 두 마음 모두 육아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 마음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다. 엄마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부모는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보와 상호작용, 상호작용 안에서의 감정적 교류가 합쳐져야 가능한 것이다. 즉,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을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대하느냐가 결합된 총체적인 과정이다.

욱한 배우자의 감정을 미화하지 말라.

직장 생활이 힘든 것은 내 숙제다. 내 숙제로 아이의 권리나 다른 사람의 안전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

부모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것은, 부모의 잘못을 꼬집고 부모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아니다. 부모를 더 좋은 사람으로 바꾸려는 것도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그랬구나. 내가 이런 영향을 받았구나’라고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배우자는 절대 전문가나 치료자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전문가가 하는 말과 내 배우자가 하는 말은 다르게 들린다.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아 주는’ 것이 아니다.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 싹 트고, 애착이 형성되고, 아이가 바르게 성장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안정되고 부모를 신뢰해야 부모의 훈육도 잘 받아들인다.


너무 길다. 추리고 추려도 이렇게 많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이론과 실전 경험을 겸비한 육아 전문가의 일관성 있는 육아 철학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상세히 안내되어 있다.

대처법과 실천법이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수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육아를 하다가 화가 난다? 그럴 수 있다. ‘화’라는 감정 자체에 좋고 나쁨은 없다. 그런데 그 ‘화’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좋고 나쁨이 있다. 오은영 선생님은 정확히 이렇게 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화’의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고 있다면 그것도 한 번 따져봐야 한다. 화가 난 게 정말 아이 때문인가. 실은 내 마음의 사정이 아닌가. 사실 아이는 죄가 없다. 아이는 난 대로 커나갈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부모인 나 자신에게 있다.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봐야한다. 때론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성숙한다는 건 그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표는 거창하다. 안전한 사회 만들자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란 폭력이 없는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사회이다.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 능력은 가정에서부터 배울 수 있다. 부모가 ‘욱’하며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 역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능력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아이는 작고, 여리고, 무능하기까지 한 존재이다. 그 존재를 어른인 부모가 존중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가장 먼저는 아이를 혼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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