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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Dec 10. 2021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어봤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사고 싶은 게 있었으면 아마 내가 직접 샀을 것이다. 사고 싶지만 살 수 없는 - 이를테면 500만 원이 넘는 카메라 같은 - 은 아직 내 것이 되기엔 이르다.


요즘 부쩍 테니스를 자주 치고 있으니까 테니스 관련 용품이 좋겠다 싶으면서도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고 만약 물품이 늘어나면 정리와 관리와 처분의 부담도 같이 생기니 번거롭겠다 싶었다. 적당히 둘러댈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게 내 삶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오프 화이트를 만들었던 버질 아블로가 4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듣기론 2년 정도 전에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남은 인생을 자신이 해왔던 패션, 창작 일에 바쳤다.


남은 인생이 몇 년이 더 있었든지 간에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버질 아블로


지금 내 나이라면 기대여명이 약 45년 정도 남았다고 한다(통계청 생명표 참조). 이 45년에서 43년을 덜어내고 이제 남은 시간이 딱 2년 뿐이라고 한다면,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며 여생을 바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인생의 사랑을 찾았다. 가족을 통해 인생의 행복도 찾았다.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싶지만 이제는 인생의 과업을 찾아보고 싶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맥락과 크게 벗어나 있을 것 같진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힌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흔들림 없이 보람되게 이어나갈 사명을 품고 싶다.


여담으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한 생일 전야 파티는 정말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케익을 골라서 주문해 준 아내가 고마웠다. "오늘 아빠 생일인데, 선물은 어디에 있어?" 하고 장난스럽게 묻는 나에게 첫째 총총이는 "아빠, 우리가 선물이야!"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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