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더 오래 학교에 있는데 왜 더 신나하는 걸까?
[이전 글]에서, 돈·시설·교사 선발 경쟁률—표면적 지표에서는 한국이 호주를 이긴다고 썼다. 그런데 아이는 호주 학교가 즐겁다고 한다. 숫자에 뭔가 빠진 게 있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가 시간이다.
한국 초등학생의 연간 수업시간은 655시간이다. 호주는 1,000시간. OECD 평균은 804시간. 호주 아이들은 한국보다 53% 더 오래 학교에 있다.
심지어 갓 입학한 1학년도 오전 9시 ~ 오후 3시 일과를 진행한다!
직관적으로는 "그러면 호주 아이들이 더 힘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다.
시간이 많으니까 여유가 생긴다.
연간 총량만 다른 게 아니다. 하루의 리듬 자체가 다르다.
한국 초등학교는 40분 수업, 10분 쉬는시간이 기본이다. 40분. 뭔가에 몰입하기엔 짧고, 그냥 앉아있기엔 긴 시간. 교과서를 펴고, 선생님 설명 듣고, 문제 몇 개 풀다 보면 종이 친다. 뭔가를 제대로 배웠다는 감각이 들기 전에 끝난다. 그리고 10분 쉬는시간. 화장실 다녀오면 끝이다. 놀기엔 너무 짧다.
호주 초등학교는 수업 블록이 훨씬 길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70~90분 단위로 수업이 진행된다. 한 교시가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그 시간 안에서 선생님이 설명도 하고, 아이들끼리 토론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고, 조용히 자기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도 있다. 하나의 블록 안에서 리듬이 있다. 앉아서 듣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움직이고 만들고 생각하는 시간이 섞여 있으니까 길어도 지루하지 않다.
쉬는시간도 다르다. 모닝티(first break)가 25~30분, 점심이 30분 넘게. 모닝티 때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후딱 먹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 시간에 진짜로 논다. 뛰어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땀을 흘린다. 한국의 10분 쉬는시간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서 활력이 느껴진다. 신기하다. 1,000시간이라는 더 긴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오히려 덜 지쳐 보인다.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리듬의 문제다.
한국은 655시간 안에 국가 교육과정의 모든 성취기준을 소화해야 한다. 교사도 아이도 쫓긴다. 하나의 단원을 끝내면 바로 다음 단원으로 넘어간다. 한 과목에 일주일 넘게 같은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사가 게으른 게 아니라, 시간이 없다.
호주 학교에서는 한 주제를 천천히, 깊게 다룬다. 전체가 같은 페이지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 초등학생 한 학기 분량에 가까운 345시간이 더 있으니까.
교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리더십이 필요하다.
호주 학교 선생님들은 매주 학부모에게 이메일로 상황을 공유한다. 이번 주 뭘 했고, 다음 주에 뭘 할 건지. 학교 차원에서 뉴스레터를 주기적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나는 한국에서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다. 딱딱한 공문만 받아봤다.
그리고 호주 교사 초임은 한국보다 높다. OECD 기준 한국 초등교사 초임은 약 $38,000(USD PPP)으로 OECD 평균 이하인데, 호주는 약 $50,000 이상으로 시작한다. 한국 교사는 15년쯤 지나면 동등학력 근로자보다 27% 더 벌게 되어 OECD 최고 수준에 도달하지만, 시작이 낮다. "오래 버티면 보상받는" 구조와 "처음부터 전문직 대우를 받는" 구조는 교실에서의 동기부여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연봉이 곧 역량은 아니다. 다만 호주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범위가 한국과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한국 교사가 정해진 교육과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면, 호주 교사는 다양한 출발점의 아이들을 각자의 다음 단계로 밀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같은 교실에 3학년 수준의 읽기를 하는 아이와 5학년 수준의 읽기를 하는 아이가 있고, 교사는 둘 다를 커버해야 한다. 이건 더 긴 수업시간과 더 넓은 재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과 선생님. 이 두 가지가 교실 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요인이라면, 그다음은 교실 바깥에 있다. 다음 편에서는 호주 학교의 커뮤니티에 대해 쓰려고 한다. 운동회도 못 하는 나라에서 온 아빠가, 초등학교 4학년을 부모 없이 2박 3일 캠프에 보내는 나라에서 느낀 것들.
호주 학교는 즐겁다는 아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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