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학교는 즐겁다는 아이 — 다섯 개의 하우스

(3) 운동회도 못 하는 나라 vs 캠프를 보내는 나라

by 글 쓰는 총총파파


[이전 글]에서 시간과 선생님에 대해 썼다. 655시간 vs 1,000시간. 40분+10분의 빡빡한 리듬 vs 70~90분 블록과 넉넉한 쉬는시간. 교과서를 전달하는 교사 vs 아이 각자의 다음 단계를 밀어주는 교사.


이번 편에서 쓰고 싶은 건 교실 안이 아니라 교실 밖 이야기다.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느슨한 듯 단단한 규율


호주 학교는 아이들을 막 풀어놓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름 강한 규율이 존재한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지각하면 정문으로 돌아가서 교무실에서 late ticket을 끊어야 한다. 벌점이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꽤 강력한 장치다. 아이 입장에서 다른 친구들이 수업하는 교실에 ticket을 들고 들어가는 건 충분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No hat, no play." 모자 없이 등교하면 야외 활동을 못 한다. 예외가 없다. 호주 자외선의 강도를 생각하면 안전 문제이기도 하지만, 규칙 자체의 절대성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 이런 식의 단순하고 일관된 규칙이 있었나 돌아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규율이 있되, 그 규율의 목적이 "질서 유지"보다는 "안전"과 "책임"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 아이들이 규칙을 무서운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커뮤니티라는 것


나는 사실 여기서 가장 큰 차이점을 찾고 있다.


호주 학교는 커뮤니티가 살아있다.


매주 student of the week를 선발해서 전교생 앞에서 celebration을 해준다. 퍼레이드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수영 대회(swimming carnival)도 하고, 달리기 대회(cross country)도 한다.


Harmony Day라고 호주의 다문화를 축하하는 행사에서는 smoking ceremony를 한다. 원주민 전통 의식인데, 유칼립투스 잎을 태워 연기를 피우고 아이들에게 맡게 하면서 땅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한국에서 그런 걸 했다간 어떻게 됐을까. 연기를 피운다고? 학부모 민원부터 미세먼지 논란까지 상상이 된다. 대회를 해서 등수를 정한다고? 우리 아이에게 왜 실패감을 주느냐며 반대하는 학부모가 있을 것 같다. 한국 학교는 운동회도 사라지는 추세 아닌가. 학교 주변 아파트에서 소음 민원 때문에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너무나 슬픈 모습이다.


Grevillea, Wattle, Dianella, Banksia, Eucalyptus


그리고 house 시스템이 있다. 학교 전체가 다섯 개의 하우스로 나뉘어 있다.


Grevillea(빨강), Wattle(노랑), Dianella(보라), Banksia(주황), Eucalyptus(초록).


전부 호주 자생 식물 이름이다. 입학하면 하우스에 배정이 된다. 어떤 날은 교복 대신 자기 하우스 컬러 셔츠를 입고 등교하고, 수영 대회나 달리기 대회 때는 하우스 대항으로 경쟁한다. 하우스별로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해리포터의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같다고? 비슷하긴 한데, 사립학교도 아니고 동네 공립학교에서 이걸 한다.


6학년 형이 1학년 동생의 버디가 되어주는 것도 하우스 단위다. 학년이 다른 아이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고, 함께 응원하고,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챙기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소속감, 결속, "내가 이 공동체의 일원이다"라는 감각.


초등학교 4학년, 2박 3일 캠프


Term 3에는 4학년이 2박 3일 캠프를 간다는 일정 계획을 봤다. What? 부모 없이.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서 자고,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 밥을 먹고, 돌아온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부모 없이 2박 3일 야외 캠프에 보낸다고? 상상을 해보라. "애가 다치면 어쩌냐", "밤에 무서워하면 어쩌냐", "왜 부모 의견을 묻지 않고 이런 행사를 기획하느냐"등등 민원이 쏟아지고 그에 대응하느라 진이 빠지는 선생님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한국에서는 현장학습 버스 안에서 아이가 멀미를 해도 학교 책임을 묻는 분위기인데, 2박 3일 캠프라니.


호주에서는 이게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다. 아이들이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불편함을 견디고, 함께 지내는 경험. 이것도 교육이라는 거다. 교실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철학이 있기 때문인 걸까.


"Be your best. Not be the best."


이전에 입학 면담 때 교감 선생님이 학교의 모토와 추구하는 가치를 정성껏 설명해준 적이 있다. "Be your best. Not be the best." 누군가를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


이 학교 마스코트가 개구리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자도 독수리도 아닌 개구리. 개구리는 다 올챙이 시절이 있다. 누군가는 웅크리고, 누군가는 폴짝 뛴다. 높이도 타이밍도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봉사하겠다며 2년 동안 학부모회 임원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학교 교훈을 기억 못 했다. 찾아보니 "슬기, 성실, 튼튼"이다. 다 좋은 말들인데, 학교 생활 어디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걸 느끼지 못했다.


한국 학교에는 커뮤니티가 없었다. 그러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세 편에 걸쳐 관찰을 나열했다. 시간, 선생님, 규율, 커뮤니티. 그런데 이 차이들의 뿌리를 아직 안 썼다. 마지막 편에서는 한국과 호주의 교육이 애초에 뭘 하려고 하는 건지—1949년 한국 교육기본법과 2019년 호주 교육 선언을 비교해보려 한다. 개구리 학교의 "Be your best"가 알고 보면 국가 교육 선언의 정확한 번역이었다는 이야기.

호주 학교는 즐겁다는 아이 시리즈

① 대체 뭐가 다르길래?

② 655시간 vs 1,000시간

③ 다섯 개의 하우스 ← 지금 글

④ 교실의 공기


사진: Unsplash의 Rafael Atant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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