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학교는 즐겁다는 아이 — 교실의 공기

(4) "Be the best"와 "Be your best"의 차이

by 글 쓰는 총총파파


앞서 세 편의 글에 걸쳐 관찰을 나열했다. 시간(655 vs 1,000시간), 하루의 리듬(40분+10분 vs 긴 블록과 긴 쉬는시간), 선생님의 역할, 규율의 방식, house 시스템과 캠프. 이 차이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써보려 한다.




두 나라의 교육은 애초에 뭘 하려는 걸까


한국 교육기본법 제2조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1949년에 쓰여서 70년 넘게 바뀌지 않은 문장이다. 장엄하다. 하지만 이 문장의 방향은 명확하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 개인은 그 목적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설정된다. 방향이 개인에서 국가로 흘러간다.


호주의 교육 선언(Alice Springs Mparntwe Declaration, 2019)은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1. 호주 교육 시스템은 수월성(excellence)과 형평성(equity)을 동시에 추구한다.

2. 모든 젊은 호주인이 자신감 있고 창의적인 개인(confident and creative individuals), 성공적인 평생학습자(successful lifelong learners), 적극적이고 정보에 기반한 공동체 구성원(active and informed members of the community)이 된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말이 목표에 없다. 교육의 수혜자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다. "학생 중심의 전인적 접근(student-centred, holistic approach)"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아이들의 배경과 출발점이 다르다는 걸 전제로 깔고,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선언.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한국: 교육은 개인을 완성하여 국가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호주: 교육은 개개인이 자기 삶에서 자신감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Be your best. Not be the best."


교감 선생님이 한 이 말이, 알고 보면 호주 교육 선언의 정확한 번역이었다.


이 철학이 교실의 공기를 바꾼다


한국 교실에서 아이는 "우리 반"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학급 전체가 같은 단원, 같은 진도, 같은 평가를 향해 이동한다. 교사는 그 이동을 이끄는 사람이다. 이 시스템은 기초학력의 균질성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PISA 수학 점수에서 한국은 늘 상위권이고, 하위권 학생 비율도 낮다. 이건 진짜 대단한 일이다.


호주 교실에서 아이는 "나"로 존재한다. 도착점보다 출발점이 중요하다. 같은 교실에서 어떤 아이는 3학년 수준의 읽기를 하고, 어떤 아이는 5학년 수준의 읽기를 한다. student of the week는 시험을 잘 본 아이가 아니라, 자기 기준에서 성장을 보여준 아이에게 돌아간다. 누군가를 이긴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어제보다 나아진 게 축하의 이유가 된다.


아이들은 이 차이를 어른보다 훨씬 빨리, 훨씬 정확하게 감지한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그게 학교가 즐거운 이유의 핵심이 아닐까.


균형 잡기


여기서 멈추면 "한국 교육은 별로고 호주가 최고"라는 글이 되어버리는데, 그건 내 의도가 절대 아니다.


호주 교육에도 문제는 있다. PISA 성적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 추세이고, 교사 부족은 구조적이며, 지방과 원주민 커뮤니티의 교육 격차는 심각하다. 이 학교에서 아이가 행복하다고 해서 호주 전체 공교육이 훌륭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한국 공교육이 제공하는 것들—안전한 급식, 깔끔한 시설, 방과후 프로그램, 기초학력의 균질성—은 호주에서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아내의 고통을 들으면서 한국 급식의 위대함을 절감한다. 진심으로.


다만, "아이가 학교에서 행복한가"라는 하나의 질문에 한정하면, 두 시스템의 설계 차이가 답을 준다.


한국 공교육은 국가 수준의 수월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 그 설계 안에서 개별 아이의 감정이나 속도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655시간이라는 빠듯한 시간 안에 전국 모든 아이에게 같은 성취기준을 달성하게 해야 한다. 교사에게 남은 여유가 없다.


호주 공교육은 개별 아이의 성장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 1,000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 교사의 높은 재량, "be your best"라는 철학이 교실의 공기를 만든다. 그 공기 안에서 아이는 자기가 보여지고 있다고 느낀다.


두 목표가 반드시 충돌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원이 유한할 때, 어느 쪽에 먼저 무게를 두느냐가 교실의 공기를 결정한다.


다시, 아이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초등학교 4학년, 한국에서 3년을 다니고 호주에서 이제 한 학기를 보낸 아이. 두 시스템을 모두 경험한 당사자다. 둘째 아이는 이제 1학년이라 비교할 기억도 별로 없다. 그냥 매일 신나게 다니고 있다. 오히려 초반에는 언어가 안 된다고 많이 힘들어했다.


호주 학교를 다니는 첫째 아이의 표정이 말해주는 게 있었다. 학교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밝다. 한국에서 학교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밝음이다. 월요일 아침에도 신나서 학교에 간다.


첫째 아이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수영을 호주에서는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주 1회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 2회 따로 레슨을 받는다. 퍼레이드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멋져 보인다고 바이올린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악기 하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는 그렇게 거절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다시 한국 학교에 다닐 거다. 거기엔 거기 나름의 좋은 것들이 있다. 오래된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경험한 "학교는 즐거울 수도 있다"는 감각은, 아마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호주 학교는 즐겁다는 아이 시리즈

① 대체 뭐가 다르길래?

② 655시간 vs 1,000시간

③ 다섯 개의 하우스

④ 교실의 공기 ← 지금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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