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기 (5)
첫 산부인과 방문 이후 다시 산부인과를 찾기까지 무려 3주가 걸렸다.
아아. 정말 정말 긴 3주였다. 기대감 때문이었다.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는 했지만…,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어찌나 신중하시던지.
아기집이 보이기는 하지만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어요.
3주 뒤에 다시 봅시다.
슬픈 일이지만 내 주변에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수정은 되었지만 착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말이다.
오죽하면 아내는,
오빠. 초기 유산이 의외로 많다고 해.
그래서 난 아직 총총이에게 정을 잘 못 주겠어.
라고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와 내가 너무 조숙했고, 또 너무 조심스러웠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나는 3주를 기다리기가 몹시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티가 났겠지만, 아내에게는 나의 기대감, 들뜬 마음을 절대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크게 부푼 풍선이 터지기라도 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드디어 3주 만에 초음파로 만난 총총이는 약 1.22cm크기로 자라 있었다. 어른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였다.
그리고 그 작은 몸 — 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작은 무엇 — 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인간의 심박이라기에는 조금 빠른 그 쿵쾅거림을 듣고 있는데, 총총이의 심장에서 나는 소리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처음 겪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오늘이 7주 몇일차이고 출산예정일은 언제라고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임신 초기에 주의해야 할 것들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관해서도 차분히 설명해주셨다.
첫 산부인과 방문 이후 매우 조심스럽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계단 한 칸도 아내 혼자서 걷게 하기가 싫어졌다. 아내를 더욱 극진히 모시리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임신 소식을 늦게 알게 된다면 서운해할 친구 부부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는 내가 부럽다면서 지금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왔다.
나는, 물론 기쁘지만…, 두려움과 걱정도 없지 않다고 아주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신비는 있지만, 환희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네 명의 조카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여러 가족들의 고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벌써 가벼운 입덧 증상과 복부 통증으로 불편을 토로하고 있다. 한 생명을 갖고, 낳아, 기른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낳고, 또 낳는 것뿐이다. 생육과 번성이다. 어떠한 아이가 우리에게 올지 모르지만 차분히 준비하고 기다릴 따름이다.
그리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줄 수 있는 것이라도 주지 않는 지혜를 갖도록 노력할 따름이다.
그때의 나는 센티함이 지나쳐 자못 비장한 수준의 마음 상태였던 것 같다. 좋은 남편이 되기도 부족한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좋은’이라는 딱지가 붙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쑥쓰럽기 그지없지만, 그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