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기 (4)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나는 밀린 일을 마무리 하러 주말 출근을 했다. 마무리 하던 찰나 집에 있던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빠, 나 도지마롤 먹고 싶어.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뭘 사오라고 한 적은 드물었는데. 벌써 입덧이 시작된걸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무조건 사서 가겠습니다.
사무실에서 집 가는 방향에 있는 H백화점 매장에 전화를 해보니 제품이 남아있단다. 백화점 문 닫기 전에 서둘러 갔지만, 30분이 걸렸다.
그새 다 팔렸네요. 어떡하죠.
이대로 귀가할 수는 없었다. 차를 돌려 S백화점으로 향했다. 20분 걸렸다. 출발하면서 전화를 할 때엔 30개가 남아있다 했다. 막상 도착을 해보니,
죄송합니다, 손님. 다 팔렸습니다.
결국 신사동에 있다는 본점에 전화를 걸었다. 속으로는 오늘 어디서 단체로 도지마롤 먹는 플래시몹이라도 하는 건가 하면서. 집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는 방향이지만 오늘 같은 날 아내의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신사동으로 향했다.
골목에 있는 점포라 주차가 까다롭긴 했지만 결국 도지마롤을 구했다. 히터를 틀면 도지마롤의 생크림이 녹을까 싶어 히터를 끄고, 창문을 열고, 그렇게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문득 내가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서야 말하는 것이고, 아내에게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마음이 참 복잡했다. 나보다 먼저 아빠가 되어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다들 그렇게 기쁘기만 하셨어요? 저는 물론 기쁨이 가장 컸지만,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거든요….
(당시의 기분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음성 메모를 해두었다. 오글거려서 다시 들어보진 못했다.)
처음 해보는 아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당시 아내와 함께 열심히 보았던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총총아.
너로 인하여 내가 아빠가 되는 것이지만, 나도 아빠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정말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10개월 뒤에 만나게 될 너에게 딱 하나만 얘기하고 싶다.
그건 바로, 너의 엄마는 정말 예쁘고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너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너가 존경할 수 있는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엄마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너와 10개월 뒤에 만날 수 있다는 새로운 약속에 몹시 설렌다.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날, 나는 아내와 출전하기로 했던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참가신청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