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밤이 되어도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온 불빛들로 칠흑 같은 어둠을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의 아이들에게도 어둑한 밤 하늘에 홀로 떠오른 노랗고 커다란 달은 신기하고 재밌었나보다.
아이들은 거실 창 앞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달을 구경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떴다~”도 하고 “노랗다”도 하고 손을 굴리며 “동글~”도 했다. 구름이 달을 반쯤 먹어버렸을 때는 “가렸어~”도 했다.
내 생애 가장 큰 달을 보았던 건 어느 한가위 저녁 무렵 어머니의 고향인 경북 성주에 있는 외조부의 묘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던 때였다. 멀리만 있는 줄 알았던 달이 성큼 내 앞으로 와 있었다. 가족들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그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컴퓨터를 사달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시험성적을 잘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었든 지금은 전혀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시절에나 중요했고 지금은 의미를 찾기 어려운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나보다.
이제 달을 보며 소원을 빌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마음 속 염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해졌다. 내가 사랑하여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에 비록 그 순간을 피할 길은 없더라도 그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인간의 능력 역시 유한하다. “인간 가능성은 무한”이라는 말은 허풍이다. 부족한 부분은 늘 있다. 그렇다고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고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어느 영화에서는 “그걸 일일이 미친 사람처럼 메울 수는 없다.”는 대사로 표현되었다.)
꽉 차오른 달을 보며 오히려 빈 곳을 품고 살아가는 ‘겸허’의 지혜를 생각해보았다. 거친 풍파는 어른들의 몫으로 남기고, 달을 보며 신기하고 재밌어 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처럼 계속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들도 어른이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