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미단길에서 찾은 은밀한 안식처
망미단길에서 찾은 은밀한 안식처
부산 망미동의 망미단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망미단길은 MZ세대?!들에게
숨은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쁜 카페와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점차 활기를 띠며 사랑받던 이곳은,
팬데믹 이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았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킬 것 같았던
망미동 최고의 아웃풋 카페 프루토프루타는
핫플인 전포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내가 좋아했던 카페 시로네는 문을 닫았다.
물론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북적임은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골목에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남겨진 빈자리와 고요함이 깃들어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망미단길 한편에
작은 이자카야 장소가 문을 열었다.
처음엔 금방 사라질 것 같았던 이곳은
뜻밖에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조금씩 단골을 모아갔다.
지금은 주말이면 예약 없이는 들어가기 조금 어려운,
아는 사람들만 찾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예상 밖의 아늑함이 느껴졌다.
실내는 크지 않았지만 L자형 다찌가 배치되어 있어
작지만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한 느낌을 주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주방에서 요리가 나오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쉐프와 손님간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마주치거나
이야기 나누기 좋았다.
음식이 하나씩 준비되면서
작은 장소의 매력이 더 깊이 다가왔다.
먼저 나온 계절사시미는
제철에 맞춰 숙성된 흰살 생선으로,
그 감칠맛과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감돌았다.
(광어/방어/전갱이/고등어/삼치/금태/전복
가리비/홍새우/아구간 아카미/마끼 11.02기준)
고등어와 금태는 토치로 살짝 불향을 입혀,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풍미를 더했다.
한입 베어물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불향은
또 다른 감각을 깨우는 듯했다.
이어서 나온 카이센마키는
오이마키 위에 고소하고 녹진한
안키모와 톡톡 터지는 연어 알이 올려져,
식감과 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고급스러운 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이드로 주문했던, 메뉴 치킨가츠난반은
바삭한 치킨에 새콤한 타르타르 소스가 올라가있다.
맥주나 하이볼과 곁들여 먹기 딱 좋은 안주인데
하프로 주문해도 꽤 양이 많았다.
닭날개교자는 육즙이 풍부한 반면
만두소의 맛은 평범한 편이다.
찍어먹는 소스가 있어서 일까?
마지막으로 닭곰탕우동은
담백한 닭육수에 중면사리가 말아나온다.
간을 조금 더 하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순한 맛을 선호하는 분들은 은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계산을 마치고 사장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장소가 어떻게 망리단길까지 들어왔는지 조금은 알게되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넓은 공간보다는
음식의 품질에 더 집중하는 분 같았다.
합리적인 임대료의 상권을 찾은 이유는
손님들이 부담 없이 와서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다.
인기 상권 보다는 신선한 재료와 푸짐한 양 에 투자하고,
손님에게 진심을 담아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사장님들의 신념같다. (물론 아닐수도 있다.)
사장님의 이러한 철학 덕분에, 장소는 단순히 식사하는 곳이 아닌
각별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공간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요란하지 않고 소박하게 마련된 공간이지만,
그 진정성 덕분에 사람들은 한 번 찾고 나면
다시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망미단길의 고요한 골목을 걸어 나온다.
밤이 깊어질수록 골목은 더욱 조용해졌고,
이자카야 장소에서 보낸 시간이 마치
작은 비밀처럼 남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했다.
망미단길과 장소는 짧지만 부산의 변화 속에서도
고유한 매력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리한 곳이었다.
아는 사람만이 찾는 비밀스러운 장소로 남아,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그때의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내가 자란 망미동에 우리 부부의 안식처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