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으로 피어나는 봄
아직 바깥공기에는 겨울의 찬기가 남아 있다.
아침 문을 열면 공기가 서늘하게 볼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꽃샘추위도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공기 속에는 겨울과는 다른 기운이 묻어 있다.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봄의 내음이다.
아마도 계절은 그렇게 오는 모양이다.
갑자기 한꺼번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문 앞에 조용히 서서 노크를 하는 것처럼 조금씩 스며든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시선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가지 끝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 홍매화 때문이다.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가 더 많지만,
그 사이사이에 작고 선명한 핫핑크빛 꽃잎이 촘촘히 달려 있다.
마치 누군가 겨울의 회색 풍경 위에 작은 색점을 하나씩 찍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 색은 유난히 또렷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자기 색을 드러낸다.
홍매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 어딘가가 살짝 들뜨는 느낌이 든다.
꽃잎 하나가 조심스럽게 “이제 곧 봄이야.” 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봄이 가까워질수록 또렷하고 밝은 색들에게 자꾸 마음이 끌린다.
겨울 내내 무채색의 풍경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갑자기 깨어나는 느낌이다.
선명한 색을 보고 있으면 무심코 굳어 있던 얼굴 근육도 조금씩 풀어진다.
마음도 어느새 밝은 쪽으로 천천히 기울어 간다.
마치 꽃잎이 먼저 미소를 짓고, 그 미소를 내가 따라 하는 것처럼.
길을 걸을 때면 공기의 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땅이 녹아 올라오는 흙냄새, 나무껍질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상큼한 꽃향기까지.
그 모든 냄새가 뒤섞여 아주 미묘한 봄의 향기를 만든다.
나는 가끔 일부러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그 향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공기와 함께 어떤 기분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한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굳어 있던 생각들이 느슨하게 풀어진다.
숨결 하나하나에 봄의 온기가 실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은 창가에 앉아 있다가 햇살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오고, 바닥 위에 가느다란 그림자를 만든다.
그 빛 위로 바람이 살짝 스치면 공기가 아주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계절이란 결국 마음속에서도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밖의 세상은 아직 완전히 따뜻해지지 않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아침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흔적을 품고 있다.
하지만 홍매화 한 송이를 바라보고 봄 냄새를 한 번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마음 안에서는 이미 계절이 바뀌고 있다.
봄날의 햇살과 향기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음속에 작은 꽃 하나를 피워 본다.
비록 바깥세상이 아직 차갑더라도,
내 안의 봄날은 이미 나를 찾아와
아주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