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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Dec 03. 2021

엄마 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

"엄마... 배가 너무 아파...."


"엄마 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


그저께 미열이 나더니 심하게 설사를 하기 시작한 둘째는 종일 배가 아프다고 운다. 어제 아침 바람으로 소아과에 가서 지사제를 처방받아 왔지만 소용이 없다. 물만 마셔도 아니 약을 먹어도 화장실 행이다.


이러다 탈수 오는 거 아닌가 놀라서 오늘 아침엔 부랴부랴 입원실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어찌나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침대는 고사하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수액을 맞았다.




세 시간을 맞아야 하니 아이도 나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 플라스틱 의자라도 맞붙여 내가 입고 있던 코트를 깔아 최대한 등 닿는 부분이 배기지 않게 했다. 아이의 겉옷과 내 목도리를 이불 삼아 아이를 내 무릎에 눕혔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금세 잠이 드는 아이. 새벽에도 몇 번을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했고 잠결에 요에다 싸버렸을 땐 엉덩이를 씻느라 샤워기 물을 맞아야 했다. 얼마나 고단했을까.


피검사와 X-ray 결과, 염증 수치가 4배 이상 높고 배에 가스가 많이 차 있어서 배가 아프게 생겼다고. 2~3일 더 고생해야겠느니 탈수 오기 전에 입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문제는 입원을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는 것. 12명의 대기자가 있다고 한다. 일단 대기를 걸고 집으로 오니 3시가 넘었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한바탕 내렸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잠잠하다. 그동안은 너무 배 고파하면 흰 죽을 주거나 보리차 반 컵을 마시게 했는데. 이번엔 수액을 맞았으니 물도 딱 한 모금만 마시게 했다. 아무리 배고프다 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안 먹는 게 좋다며 유튜브 영상으로 유인했다.


"엄마 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를 수십 번 외치며 문질문질 배를 만져주었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 아이.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뱃속 천둥소리가 사그라들기를...


때마침 첫째도 축구 교실에 갔다. 갑자기 으슬으슬 한기가 돈다. 아이 돌보느라 내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피곤함이 휘몰아친다. 아이 곁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막상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하필 친정 엄마도 쓰러지셔서 입원해계신데 가보지도 못했다. 왜 이렇게 일은 한꺼번에 몰아닥칠까.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고 외치지만 정작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임에 서글퍼진다.


스토아철학에서 말한 "위에서 바라보기"를 떠올려본다. 지구 가장 높은 곳에 지금 서 있다. 서글퍼보였던 상황에서 빠져나와 나를 바라본다. 순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엄마 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를 부르며

따뜻한 이불 속에 함께 누워 있는 지금에.

온전히 아이를 내 품에서 돌볼 수 있음에.

이토록 진하게 모든 걸 다 느끼며 살.아.있.음.에 얼마나 다행이냐 위안을 삼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오늘도 외친다.






+) 장염이 심할 때


- 기저귀 (팬티라이너 붙여놨더니 계속 넘쳐서 더 큰 것 필요)

- 방수요 (아니더라도 아이 자는 곳에 요를 더 깔아서 그것만 쏙 빼고 잘 수 있게 준비)

- 보리차나 이온음료 (탈 수 오지 않게 조금씩 마시도록 함)

- 엄마 간단식 (차려먹으려니 힘들어서 자꾸 넘기게 됨. 간단히 먹을 것 시키든 사놓든 해야 함)

- 첫날 증세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빠르게 병원 가서 증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열이 난다면 약국에서 지사제라도 사서 미리 먹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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