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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볶음밥에 담긴 마음

by 정예슬

지난 주말 마음만 바쁘고 몸이 굼떠서 스스로에게 뾰로통해 있었다. 혼자 무언가 낑낑대고 있는 게 느껴졌던지 남편이 요란스럽게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슬이짱~ 내가 김치 좀 볶을게~"

"넹..."

냉장고 속 이런저런 재료들로 김밥을 싸 먹을까 했더니 김치를 볶아서 속 재료를 만들 생각인가 보다.


재료가 속속들이 준비되어가도 김밥 쌀 생각은 아니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자 남편이 눈빛으로 재촉을 해대다 결국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슬이짱~ 내가 김치볶음밥도 했는데 어서 와봐~"

바로 김밥을 싸러 가려는데 남편이 김치볶음밥 좀 보라고 야단이다.

"내가 김치볶음밥 했다니까~ 봐봐~~~"

김치랑 밥이랑 볶은 게 김치볶음밥이지 뭐 별건가 싶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꺅~~~~~~ 이게 뭐야~~~~~~~~~"

"이쁘지? 이쁘지? 얼른 사진 찍어!!!!!"

푸하하하. 내가 마구 웃기 시작하자 기분이 좀 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이 물었다.


"어때? 인생 살만하지 않아?"

의기양양한 말투가 너무 웃겨서 반은 울고 반은 웃으며 끄허허헝 이상한 소리로 화답을 했다.


한바탕 웃고 나니 덩그러니 놓인 하트 넘어 조리도구로 요리조리 예쁜 모양을 만들어보려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야심 차게 완성한 하트 김볶을 보며 혼자 얼마나 뿌듯했을까 :)




김치볶음밥에 담긴 마음은 역시 '사랑'일까?


결혼 9년 차 남편이 어떻게든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가상한 노력이자,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이라고 풀어내고 싶다.


곁에 있는 사람의 작은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 갖고 어루만져주는 것.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치부하지 않고 고생했다고 혹은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것.


앞으로 남편의 하트 김볶을 떠올리며 나도 그런 작은 마음들을 내어 보이겠다고 다짐해본다♡




+) 캘리그라피 재능기부 중이신 서영님께 안네 프랑크의 문구를 부탁드렸는데, 지금의 글과 어울리는 것 같아 덧붙여봅니다.


서영님 멋진 캘리그라피 감사합니다♡♡♡


먼저 줄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나누는, 그런 따뜻한 설 연휴 보내시기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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