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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Jan 08. 2023

규제된 사용자는 모르는 내 글의 참 맛

한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다.

One thing!

단 하나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카드 뉴스에 열중했던 것이다.


카드뉴스와 서평에 열을 올리면 올릴수록 브런치가 그리워졌다. 주절거림을 해소할 공간은 역시 이곳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글을 발행할 수는 없다며 자꾸만 넣어두길 반복했다. 그렇게 내 서랍 속에는 아래로 내리고 또 내려도 끝을 알 수 없는 글들이 쌓여버렸다.


그 와중에도 구독자가 생기고 브런치는 어서 너의 꾸준함을 보여달라 재촉해 왔다. 나만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란다. 벌써 새해에 일곱 번의 해가 떴다. 오늘은 기필코 발행 버튼을 눌러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음. 먼저 댓글에 답부터 드려야겠지?'


가장 최근에 달린 댓글에 모르는 분의 성함이 보였다.


'누굴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이 열리길 기다렸다. 뾰족한 댓글들 때문에 브런치 메인글을 비공개로 돌렸다던 몇몇 작가님들과 다르게 나는 메인에 오른 글들에도 늘 격려와 공감의 댓글만 달렸다. 그러니 이번에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역시, 따뜻한 분들의 정성스러운 댓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댓글에서 시선이 멈췄다. 규제된 사용자? 다시 알림 창으로 갔다. ㅇㅇㄱ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뭐지 이 사람? 부업 광고라도 했나?? 혹여 악담을 퍼붓고 간 걸까? 대체 무슨 글을 쓰면 블라인드 처리가 되는 걸까?


아, 너무너무 궁금해!!!


한동안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게 뭐 뾰족한 수가 있는 일인가. 댓글을 보기도 전에 브런치 관리자가 부지런히 일을 해주어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 감사한 일 아닌가? 내 마음 다칠 일도 없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자 부유물이 가라앉고 연둣빛 이파리 하나가 동동 떠다녔다.


"모든 사람이 널 좋아할 순 없어. 알잖아? 설사 그 댓글을 봤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일 뿐이야. 어쩌면 그냥 광고일 수도 있고. 너무 마음 쓰지 마. 이제 처음 마음먹은 대로 브런치에 글을 써보는 게 어때?"


"응 그럴게 이파리야~ 내 글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 맞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이야기를 글로 써봐야겠어. 먼저 캡처부터 하고 올게!"


그렇게 규제된 사용자는 내게 당했다, 캡처를! 새해 첫 글로 그리 희망적이지도 밝은 내용도 아니지만 인생이 늘 그림 같을 수는 없으니까. 꽤 신박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이어간다.


엊그제 읽은 이현 작가님의 <짜장면 불어요!>가 문득 떠오른다. 정확히는 그 누구보다 철가방과 짜장면(자장면이 아니다!)에 대한 철학이 투철한 기삼이가 말이다.


"자식, 걱정하지 마. 난 그냥 철가방 손에 들고 부릉부릉 오토바이 시동 걸면, 기분 바로 충전이라고."
"형은 철가방 드는 게 그렇게 좋아요?"
"나? 난 그냥 내가 좋아."
"형, 왕자병 아니에요?"
"왕자병? 몰라. 뭐, 왕자도 괜찮겠지. 난 철가방 드는 나도 좋고, 왕자인 나도 좋고....... 또 뭐 다른 거 하게 되면 그런 나도 좋아할 거야. 난 내가, 너어어ㅡ무 좋아."

/ <짜장면 불어요!> 이현 동화집, 창비, 147쪽


디잉.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대학 따위 나오지 않아도 철가방을 들고 빠라빠라빠라 밤~을 외쳐도 내가 너어어어무 좋다는 기삼이를 보니 그간의 근심 걱정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기삼이라면 규제된 사용자가 쓴 댓글을 두 눈으로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아 폭주족은 나쁘다는 용태의 말에 시무룩해지긴 했으니, 아주 조금은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철가방 들고 오토바이를 타면서 훌훌 털어버리겠지.


기삼이에게 철가방과 오토바이가 있다면 나에게는 독서와 글쓰기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폭풍 같은 마음이 잠잠해지도록 돕는 '읽고 쓰기'를 만나 참 다행이다. 그러니 나도 기삼이처럼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하면서 :)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글을 계속 쓸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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