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언니 정예슬 Jun 24. 2023

참 좋은 우리

요며칠 작업할거리들이 있어 많이 앉아 있었던 탓에 아침부터 걸으러 나왔다. 아이들 자는 틈에. 물론 남편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가능한 주말 아침이다.

촉촉한 콧잔등과 싱그러운 풀냄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우측보행 스티커가 있다는 걸 인지했다. 그리고 아빠를 떠올렸다.





2005년 여름 밤, 아빠와 마지막 산책을 했던 시절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퇴근을 하고 오신 아빠와 종종 남강변을 걸으러 갔다. 그 때만해도 좌측 보행에서 우측 보행으로 바뀐지 얼마되지 않아 우왕좌왕 하던 때였다.

"우측 통행입니다~ 오른쪽으로 걸어주세요~"

아빠는 나와 산책을 하러 나간건지 질서 정리를 하러 나간건지 모를만큼 그 일에 열심히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뭣보다 생판 남인 사람들 앞에서.

아마 몇 살이 더 어렸다면 그런 아빠가 조금 부끄러웠을 거다.

"아 그냥 가요 아빠~~"
라고 말하며 아빠를 끌어당겼음에 틀림없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 무렵 아빠의 모습을 제법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저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걸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임감 있게 어떤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주어진 일만 하고 살기에도 힘에 부치는데.

누군가 돈도 안되는 독서모임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 물을 때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빠때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피가 어디 가겠냐며.

아마 나와 함께 독서모임 리더로 열일 중이신 분들도 비슷한 사정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 모두 오지라퍼 유전자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일까?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우리가 참 좋다 :)

작가의 이전글 우리나라 도서관의 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