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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Nov 05. 2023

아직 안 자요

2012년 비 내리는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카카오톡 프로필로 본 그 남자의 첫인상은 솔직히 무서웠다. 다리를 꼬아 그 위에 기타를 걸쳐놓고 인상을 인상을 꽤나 쓰고 있었다.


"인상파 조폭 같았어."


말을 놓기 시작할 무렵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남자는 한참 웃으며 그 사진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무척 짧다. 지금도 그렇다. 알고 지낸 11년이라는 세월 중 그의 머리가 길었던 적은 결혼식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다.


"신랑 분 머리가 너무 짧아서 스타일링이 힘들어요. 결혼식 전까지는 더 길러오세요."


웨딩 촬영 헤어메이크업 할 때도 길러오라고 해서 나름 기른 것이라는데 결혼식 당일에도 솔직히 긴 머리라고는 할 수 없는 길이였다. 겨우 끝을 꼬부랑 말 수 있을 정도였던가.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주기로 미용실을 찾는 남자다. 염색과 커트 모두 15,000원이라나. 아무리 짧은 머리라 해도 여자라면, 남자 전용 미용실이라도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이후 줄곧 5년 넘게 다니는 곳이라 단골 가격이 적용된 점도 있지만...


포인트가 참 신기하다. 그녀는 살면서 2년 넘게 꾸준히 찾는 미용실이 없다. 1년도 길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샵을 찾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 평생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정말 모발이 굵고 튼튼하시네요. 숱도 많고요!"


다른 사람의 세네 배에 가깝다는 머리숱. 머리카락 두께는 어찌나 두꺼운지 머리카락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그래서 펌이 잘 안 먹는다. 잘 된 거 같아도 새 머리가 한 구멍에서 세네 가닥씩 나오기 시작하면 마음대로 굴러간다.


어렵다. 참 어려운 머리다. 미용사가 다루기도 그녀매일 손질하기도. 그래서 요즘 그녀는 펌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숏컷을 유지 중이다. 세상 편한데 좀 못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모를 더해주는 1순위가 다이어트라면 2순위는 머리빨이 아닌가.







다시 연애시절로 기억을 돌려본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시작은 이랬다. 10월 마지막 날 소개팅 이후 애프터 신청을 받은 그녀. 강남에서 영화를 보기로 한다. 세 번째 만난 빼빼로데이, 그 남자가 고백을 다. 그날로 남녀가 1일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그즈음 소개팅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리즈 시절이었다. 하루에도 몇 타임을 뛰었으니까. 딴에는 좀 재봐야지 싶었다. 어이가 없는 건, 직업으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남들이 탄성을 지르던 남자들이 그때의 그녀에겐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걸 바로 콩깍지라고 하는 것일까. 다른 남자들이랑 밥을 먹는데 자꾸만 그 까까머리 남자가 그녀 머릿속에 떠올랐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날 밤, 복도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나 불침번을 서던 중 그녀는 카톡을 보내기로 한다.


"자요?"

"아직 안 자요."


그렇게 시작했던 대화의 끝에 남녀는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고, 어느새 1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역사적인 날을 만들어 버렸다. 역시 거사는 밤중에 이루어지는 것.


하지만 이 남자, "자요?"라는 물음에 0.1초의 기다림도 없이 답을 했던 건 저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 미안해요ㅠ 어제 일찍 잠들었어요."


다음날 새벽 5시가 되어야 답이 오는 남자. 휴우. 낚인 거지? 요즘에야 미라클 모닝 중이라지만, 그 시절 그녀 라이프스타일이 정반대인 남자와 연애를 하며 외로운 밤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뭐야? 잡아놓은 물고기인가? 어째 이렇게 달라져?"

"퇴근하고 소파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그대로 잠들어서..."


급기야 이별을 통보하기도 했다. 매주 주말마다 남녀는 데이트를 한다. 언젠가부터 늘 그녀가 먼저 약속을 잡고 있는 거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빠! 별로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헤어지자!"


그날 남자는 처음으로 그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남자의 눈물이라니... 하아... 여자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해할 수 있게 이유라도 좀 제대로 말해보라 했는데...


 남자는 주말 아침마다 000을 다니고 있었다.



(다음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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