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는 동반자 혹은 우정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베르'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유대인의 전통 교육 방법으로 두 명씩 짝을 이루어 묻고 답하는 일종의 토론 학습이다. 단순한 논쟁에 그치지 않고 지혜와 진리를 깨닫는 것이 곧 하브루타가 지향하는 바이다. 막연히 '토론'이라고 하면 어려워보이고 '질문'은 어떤 걸 해야할 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토론이나 질문이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한 모습 아닐까? G20에서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특별히 주최국인 한국 기자단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으나 아무도 마이크를 잡지 못했던 일화로 한국의 실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후 하브루타 도입이 더욱 활발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하브루타의 '하'자도 모른다는 사람이 많다.
하브루타 관련 샘플 원고를 쓰며 또 관련 책을 수십 권 쌓아두었다. 이미 집에 있는 책만으로도 책장 한 줄이 꽉 차는데 도서관에서도 한 아름 빌려왔다. 빠르게 읽어나가며 생각했다. '하브루타가 처음인 사람들이 이 책들을 읽으면 참 어렵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겠다.' 하브루타가 좋은 건 알겠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만만치 않다. 막상 시작을 했어도 이게 맞는 건지 영 찝찝하다.
내가 쓰려는 책은 '실천'에 중점을 둔 가이드를 써보려고 한다. 타겟은 초등 학부모! 하브루타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잠자리, 밥상머리, 이동하는 차 안 어디서나 가능하다. 꼭 하브루타 모임을 만들고, 매주 책을 읽으며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 사람들은 탈무드나 토라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지만 지금 우리에겐 언감생심이다. 대화 조차 부족하지 않은가?
"숙제 했어? 손 씼었어? 학교에서 별 일 없었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엄마는 잔소리 대마왕이 되어 있을 뿐이다. 주 1회 하브루타 독서모임이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것 또한 숙제를 위한 숙제가 되면 안 된다. 이건 차후 문제다. 일단은 부모와 자녀 모두 입이 트이고 질문과 대답 다시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시급하다.
어제 둘째와 단 둘이 버스 데이트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교정을 위한 검진을 가는데, 고작 3정거장이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편도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보통 갈 때는 시간 맞춰 가느라 버스를 타고 올 때는 아이 컨디션에 따라 걸어오기도 한다. 어제는 저녁 7시 반 예약이라 30분 전 쯤 나서니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엄마! 차 타고 가요~"
"퇴근 시간이라 막혀."
곧 도착한 버스를 타고 아이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버스도 막히잖아요."
"우리가 가는 길엔 없지만 버스 전용 차선이 있어서 더 빠를 때도 있어."
"우리 차 타고 가면 돈 안내도 되잖아요. 돈 낭비 아니에요?"
"아... 거리가 짧아서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우리 차를 탄다고 공짜는 아니야. 기름값이 들어~ 그리고 버스 타는 게 환경에도 좋아."
"엥? 버스도 연기 나던데요!!!"
"음... 여기 봐봐. 사람들 많이 타고 있지? 이 사람들이 다 자기 차 타고 나오면 수십 대의 차가 배기 가스를 뿜잖아. 그런데 버스를 타면 딱 한 대잖아~"
"아....."
나는 둘째의 질문 실력에 조금 놀랐다. 어려서부터 늘 형과 비교되는 점이 많았다. 말을 시작한 시기는 첫째보다 훨씬 빨랐지만 발음이 부정확했다. 단적인 예로 형아를 효까라고 불렀다. 보통 엉아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발음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말은 조금 늦었지만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내뱉으며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던 첫째와 완전히 정반대였다. 대신 둘째는 몸 쓰는 건 뭐든 잘했다. 킥보드도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타기 시작해서 동네 사람들이 킥보드 신동이라 불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질문이 없는 아이였다. "믜야?" 뭐냐고 물어보는 정도? 질문을 하기도 전에 먼저 만지고, 먹고, 몸으로 들이댔다.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앉아서 읽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런 아이가 지금은 책 읽기를 즐긴다. 엄마와 긴 시간 눈 맞추고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엉덩이가 들썩이며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가 많이 변했다. 식당에 가면 아이들이 참 얌전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말도 안돼!!!!
질문 대화의 힘이라고, 그 바탕에 하브루타가 있었다고 단언한다. 질문을 잘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많이 해보면 된다. 무엇이든 자꾸 하다보면 늘게 마련이다. 3년 넘게 첫째아들 하브루타 독서모임을 하며 매주 책을 읽고 질문을 만들고 있다. 이 외에도 독서모임을 하며 발제문이나 간단한 질문을 만든다. 자꾸 하다보면 책을 읽다가 질문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책 여백이나 포스트잇에 끄적인다. 습관이란게 참 무섭다. 책을 읽고 으레 질문을 만드는 일을 하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솟아난다. 질문이 땅에서 마구 솟는 건 아니다.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 읽다가 궁금해서 생기는 질문,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것 등등 결국엔 책과 본인 머릿속에 있다.
질문을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것은 반복된 훈련의 결과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은 수시로 물음표를 던진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로 이어가려면 부모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함께 풀어가는 힘도 여기에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미래 인재 역량 중 하나인 의사소통 능력을 '협력적 소통 능력'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협력하는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닐까?
거기에 딱 맞는 교육 방법이 바로 하브루타이고 질문 교육이다. 자연히 인성 교육이 되기도 한다. 질문을 하려면 서로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니까. 내가 살아 있는 것, 우리가 함께하는 것, 눈 앞의 모든 것들에 오감을 쫑긋 세워 감탄하고 감사하면 자연스레 질문은 생기게 마련이다. 어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초등학교 신입생 감소'에 대한 신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는 지난 주말 사진을 보며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정하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다. 이 모드 것을 녹인 책을 쓰고 싶다. (샘플원고를 써야 하는데 소망글을 적고 있네. 일단 밥 먹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