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빠의 기일이라 친정에 갔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들은 TV를 실컷 보았다. 지겨워진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뛰면 안 돼!"를 연발하다가 "마스크 챙겨. 밖에 나가자." 소리쳤다. 나가자는 말에 모모가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뛰어왔다. 낑낑 거리며 자기도 데리고 나가 달라고. 어느새 열 살이 된 반려견 모모는 사람 말을 못 한다뿐이지 하는 행동은 거의 사람에 가깝다. "모모도 갈까?" 하면 귀를 쫑긋하며 멍멍! 자기도 데려가 달란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친정 엄마 곁에 와서 이불을 박박 긁으며 그렇게 깨운다고. 아무튼 우리 넷은 산책을 가기로 했다. 아파트 놀이터는 반려견 출입 금지지만, 산책로는 가능하다. 첫째와 둘째가 서로 모모의 목줄을 잡고 가겠다고 실랑이를 하다 번갈아서 잡기로 했다.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헤집고 다니다 아이들의 키만큼 수풀이 우거진 곳에도 들어갔다. 커브를 도는데 벤치에 한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인사성 밝은 둘째가 "앗. 할머니다!!! 안녕하세요~"하며 뛰어갔다. 주름진 손등을 쓰다듬기까지. 하필 그 순간 모모가 응가를 했다. 배변 봉투에 응가를 넣고 정신없이 치우다 일어섰는데...
"고마워요. 아이가 저한테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해주네요. 정말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라며 그 할머니께서 연신 고맙다고 하시는 거다.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날 것만 같던지. 요양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떠올랐고, 하늘에 계신 아빠도 생각나서 싱숭생숭한 마음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이 한마디에 그토록 고마워하시다니. 자녀분들이 멀리 사시는 걸까. 말투가 여기 분이 아니시던데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걸까. 햇살 쏟아지는 벤치에 하염없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글 윤여림, 그림 안녕달 / 위즈덤하우스
▶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갓 태어나 엄마를 인식한 영아는 엄마가 잠깐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집이 떠나가라 운다. 대상 영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나 물체가 시야에 보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존재함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대상 영속성이다. 이것이 생기지 않은 영아는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지는 줄알고 펑펑 운다. 시간이 흐르고 까꿍 놀이나 숨바꼭질 등으로 서서히 대상 영속성이 생긴 아이는 집 안 어딘가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화장실 문을 꽤 오랫동안 닫을 수 없었지만.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을 때 "잘 놀고 점심 맛있게 먹어. 낮잠 코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수백 번은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것, 꼭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라는 그림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화장실 문 앞에 서서 문 두드리며 우는 아이,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와도 문 앞에서 목 놓아 우는 아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우리 첫째도 가끔 재활용 분리수거하러 다녀오면 중문 앞에서 훌쩍이고 있다. 남일 같지 않은 내용들에 푸욱 빠져 들었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으며.
이 책은 어느새 우리의 세월을 앞지른다. 장성한 아이는 국토대장정을 떠나고, 지팡이를 짚은 아이의 엄마는 주름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벤치에 앉아 있다. 벤치. 그래서 어제 그 할머니를 보는 순간 이 책이 다시 떠오른 것 같다. 하염없이 벤치에 앉아 계신 그 모습 때문에. 누구를 기다리시는 걸까. 이 책의 결말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길. 나도 언젠가 하늘에 계신 아빠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겠지요. 코로나로 미뤄진 무수한 만남들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