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1)
13일 오후(5:40)에 출발하여 21시간을 비행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였다. 오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환승 대기 시간을 가졌다. 사건은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타려는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여권사진과 헤어스타일이 달라서인지, 어디 조폭 행동대장 같이 생긴 세큐어리티가 나를 강제 억류하였다. 북한 노동당 지령을 받은 테러리스트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여튼 신원이 확실한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였다. 한국 같았으면 정말 화를 냈을 나 지만, 일단 유럽에 입성해야 했기에 참았다. 억류의 세월을 견딘 뒤 7시 40분이 걸리는 비행기를 탔다. 그 7시간은 정말 죽음의 시간이었다. 21시간의 비행은 너무나 힘들었다. 116만원 에티하드 항공 싸구려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입성하는 것이었지만, 21시간은 역시 너무나 고되었다. 하지만 유럽에 갈 생각으로 난 그 정도의 고통쯤은 참아 낼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종범이가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범이는 이미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5일간 돌아다니고 있던 터였다. 벨기에에서 종범이는 이후 ‘방화여인’으로 불리는 여성(당시 이화여대 정외과 4학년)을 만났고 유럽여행 중에도 계속 나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국에 돌아와서 사귀게 되었지만 결국 종범이에게 아픈 추억으로 남게 된다. 종범이는 인생의 3번째 수능을 잘 봐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여자 사귀는데 환장해 있던 상황이었다. 유럽에 와서 여자 만날 생각에 가득 차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군에 고려대 나군에 서강대를 지원한 상태였다.
종범이는 내가 도착하는 터미널을 잘못 가르쳐 주어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헤매었다며, 21시간을 비행해서 피곤해 죽겠는 나에게 짜증부터 냈다. '이게 짜증을?' 하지만, 난 이 친구와 어차피 한 달을 같이 살아야 하기에 일단 비위를 맞춰주기로 하였다. ‘그랬니?? 미안하다 일단 배고프니까 밥부터 먹자‘ 살살 달래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밥을 먹고 뮌헨으로 출발하였다.
유럽은 기차가 매우 발달해있었다. 전 대륙을 철도가 수놓고 있었다. 특히 독일, 프랑스는 고속 철도가 전국을 뒤덮고 있어 아무리 먼 도시도 5시간 내에 갈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은 매우 먼 도시였지만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본 독일의 풍경은 매우 한적했다. 바이에른 주(독일 남부)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1월의 한국은 영하 15도에 육박했으나 독일은 춥지 않았다. 나는 단단히 껴입은 파카를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약간은 흐린 날씨였지만 전형적인 독일남부의 자연과 유럽식 건물은 나에게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와 날씨가 흐린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야 알았다.
뮌헨에서는 4일을 있었다. 원래 계획은 뮌헨에 짐을 놓고 2일은 뮌헨 시내를 구경하고 나머지 2일은 가르미슈 파르키헨슈테인과 퓌센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가르미슈는 요번에 평창과 겨울올림픽 계최를 두고 맞붙었던 도시이다.
유럽에서의 첫 잠자리로 뮌헨에 있는 움밧 시티호스텔을 결정하였다. 4인실 도미토리에 들어섰을 때 평소 호텔여행과 비교했을 때 너무 상황이 열악해 ‘1달을 도미토리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움밧의 시설은 동급대비 최강이었다는 사실을. 움밧은 베를린, 뮌헨, 빈 3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데 우리는 뮌헨과 빈에서 움밧을 이용하였다. 특히 움밧 뮌헨지점의 멍텅구리 빵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첫 날 우리는 뮌헨의 구청사, 신청사를 둘러보았다. 신청사는 마리아 플라츠에 위치하고 있었다. 노천카페가 늘어선 마리안 광장은 매우 아기자기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 무리, 그리고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선교사와 사진을 찍었다.
종범이는 쇼핑을 좋아한다. 나는 쇼핑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다. 가족 전체가 백화점을 잘 가지도 않거니와, 나는 만약 백화점에 간다면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있거나 혼자 지하1층 식품 매장에서 허기를 때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종범이가 쇼핑 중독자라는 것은 유럽에 도착한 첫날에 알게 되었다. 모자를 사겠다고 뮌헨 쇼핑거리로 날 안내하였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쇼핑을 하기에 나는 앉아서 기다렸다. 첫날이라 종범이 비위를 많이 맞추어 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표정에 심정이 다 드러나는 사람이다. 썩은 표정이 찍힌 사진이 압권이다.
쇼핑이 끝난 후 우리는 님펜부르크 성에서 백조들과 놀았다. 님펜부르크 성은 정확히 뮌헨의 유적은 아니지만 뮌헨에서 쉽게 갈 수 있었다. 비록 날씨는 흐렸지만 님펜부르크성의 호수와 성의 아기자기함은 ‘내가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님펜부르크 성까지 갔다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6시에 잠이 들고 말았다. 피곤함에 시차적응까지 겹쳐 한 5일간 오후 6시에 잠을 잔 것 같다. 이렇게 내 유럽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