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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21. 2023

두 번째 복직

복직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암 진단과 수술 결정까지 <스물아홉에 시작한 암 치유과정기>에 담았다면, 그 이후 이야기다. 2019년 암 진단 후 16개월 간 전업치병을 했다. 2020년 연말부터 복직했으나, 2021년 봄 수술을 결정하고 다시 장기 휴직 중이었다. 회사에서 일했던 시간보다 쉬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나의 상황을 배려하고 결정을 지지해 준 회사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첫 번째 휴직 기간에는 건강을 회복해 얼른 복직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두 번째 휴직 때는 복직 자체를 고민하기도 했다. 수술 후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파동이 일던 때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지'
'CEO도 동료들도 모두 바뀌었는데'
‘예전과는 완전 다른 회사라던데 적응할 수 있을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을까'
‘감정과 욕구를 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일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제는 알아차리면서 현명하게 일할 수 있겠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일까'
'내가 쌓아온 커리어는 어쩌나'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내가 진짜 고민되는 점이 뭐지'
‘뭐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날 두렵게 만드는 게 뭘까'
'혹시, 일 때문에 재발하게 되면 어떡하지'
'회사 생활로 복귀가 현명한 선택일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복직 단어를 떠올리면 여러 생각이 일렁였다. 앞선 걱정이고 무의미한 생각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반복하여 되뇌었다. 머리론 끄덕여지지만 마음 한편이 여전히 쿵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깊은 곳에 진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 때문에 재발하게 되면 어떡하지' 두려움을 발견하고 마주하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속에 일렁이던 흙탕물이 가라앉는 듯했다. 여전히 복직 예정일까지는 6개월 넘게 남았다. 회사로 복귀해 재기할 것인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10년 간 커리어를 이어갈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결정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개인에게 중요한 결정일수록 에너지 필요량도 많아진다. 결정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기도 쉽다. 에너지 소모와 스트레스는 암 환우에겐 주요 관리대상 1, 2호다.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복직한다' vs. '안 한다' 양자택일이 어렵다면 '복직 예정일 1개월 전에 결정한다'와 같은 방식도 가능하다.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라면 모를까.


사람 일은 모른다 하지 않던가. 두 번째 공백 기간 중에 회사에 큰 변화가 있었다. CEO가 바뀐 것이다. 직장에서 이보다 큰 변화가 있을까. 팀 동료들도 모두 바뀌었다.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했다. 굳이 회사여야 하는지, 다른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몇 번을 묻는 시늉을 내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내심 복직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사람 일은커녕 내 마음 역시 모를 때가 많다. 줄다리기 놀이 중 양측이 팽팽하게 당기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듯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혼자 치병 생활한 기간이 길었던 탓일까. 팀 사람들과 함께하는 현장이 몹시 그리웠다. 게다가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다. 사회 속 일원으로 소속되어 사는 평범한 삶이 부러웠다. 새로운 대표가 이끄는 조직이 궁금했고, 역동적인 조직에 합류하고 싶었다. 사람과 조직문화를 가까이했던 커리어를 이어 가고도 싶었다. 근로소득도 얻고 말이다. 반대로 회사 생활을 멈추면 얻는 것은 '자유'였다. 단순하지만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였다. 결론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애써서 막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던 습관을 멈춰 보기로 했다. 머릿속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백날 생각해 봤자 내가 겪었던 시절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저 내 생각이고, 상상이고, 망상이었다. 현장에 가서 경험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남은 기간 회복에 집중하며 지냈다.



복직 후 달라진 치유식이 생활


오락가락 한 마음을 다잡고 빠른 결정까지 인도해 주신 분이 있다. 치유생활을 함께해 온 대모님이다. 대모님은 휴직 생활을 마치고 복직한 경험도 틈틈이 나눠주셨다. 무엇보다도 식사가 고민이었다. 대모님은 아침에 점심 도시락을 싸가셨다고 했다. 왼쪽 어깨에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도시락 가방을 메고 출근하신다고 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음은 도시락 쪽으로 기울었지만 현실을 즉시해야 했다.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가량 걸렸다. 도시락을 간단히 싼다 해도 바깥 일과 병행하려면 체력이 부족할 듯싶었다.



복직 후 달라진 점 중 가장 만족스러운 변화는 회사 내 구내식당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점심시간 샐러드 도시락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비건 샐러드를! 평소 식사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많지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서 감사했다. 사회적으로 비건이 대세가 되니 덕을 보는구나 싶었다. 샐러드에 70%는 수분 가득한 야채로 채워졌다.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고구마, 호박 정도는 따로 챙겨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좌) 비빔밥 메뉴 위로 쌓아 올린 샐러드와 (우) 치팅데이로 선택한 찜닭


때론 치팅데이로 일반식 메뉴를 선택하고 샐러드를 곁들이기도 했다. 외식이 불가피할 때는 회사 근처 샐러드집이나 산나물밥집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팀원들도 나와 식사하는 날은 건강식 날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해 주었다. 코로나 19 감염예방 여파로 재택근무가 가능했기에 주 2회는 집에서 치유식이를 할 수 있기도 했다.




식사보다 중요한 일이 따로 있다


출퇴근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쭉 가는 길이다. 한 번 갈아타긴 하지만, 서울행 열차와 달리 붐비지 않아 자리에 앉아서 갈 확률이 90% 이상이다. 다른 하나는 두 번 환승하여 신분당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용객이 매우 많아 앉을 수는 없다. 시간이 10분가량 시간을 단축되는 것에 비해 운임요금은 배로 증가된다. 여유가 있다면 첫 번째 노선을 이용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열차 탑승 시간만 50분이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과 후에 홀로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열 명 중 일곱은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 결코 유혹에 흔들리면 안 된다. 스마트폰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내릴 때까지 보게 되니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편이 낫다. 필요한 쇼핑이나 불현듯 떠오른 사람에게 안부 연락을 보내기도 한다. 용건을 해결하면 알람을 설정하고 재빠르게 눈을 감는다. 눈 안쪽으로, 눈썹 사이로 힘주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의식적으로 깊은 호흡을 몇 차례 반복하며 미간에 긴장을 풀어본다. 명상의 시간이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자 활동이다. 따로 시간낼 필요도 없고 지켜보는 이들도 있으니 집중수행하기 최적의 장소다. 대모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씀이다. 이 말씀 덕분에 식사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 아침 점심 도시락을 챙길 시간에 명상을 하면 어땠을까 싶어요."



치유 생활도 사회생활 경력에 포함해야 한다


서류상으로는 복직이지만 현실은 신규 입사에 버금갔다. 회사는 변하지 않은 듯 변했고, 새롭게 배우고 적응할 부분도 상당했다. 상황을 파악해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 더 커졌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일 때면 조급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답답했다. 시스템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의지 외에도 전략과 인내가 필수였다. 문제 투성이었다. 내 눈에는 왜 이렇게 문제로 보이는지, 문제만 보이는지 책망하기도 했다. 스스로 피곤한 길로 걸어 들어가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했던 모양이다. 내부 사정은 내부인들은 가장 잘 알 테다. 그러나 때론 신규입사자의 조직 진단이 더 정확하기도 하다.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치유 생활 중에 익힌 알아차림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도 빛을 발했다. 그간 경력이 단절되어 퇴보했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무쓸모였다. 몸으로 깨친 수행 경험은 사회생활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자양분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혼자 다 해결해 보겠다고 바둥거렸겠다. 이제는 감정에 휘둘려 괴로워하지만은 않았다. 내 안에 피어오르는 감정을 바라봐주고 알아차리고 있었다. 치유 생활에서 배웠던 교훈을 매일 떠올렸다. 흘러가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씩, 한 걸음씩, 부단히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고마워요, 땡큐 마라톤!


치유학교에서 매일 감사한 일을 한 가지 이상 나누는 <땡큐 마라톤>을 이어오던 참이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에 눈 뜬 이후로 감사했던 일을 적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하루 일과를 돌이켜 보며 감사한 일을 적기도 했다. 답답했던 일도, 불편했던 감정도 땡큐 마라톤 앞에서는 그저 감사한 일로 바뀌었다. 가령 내가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게 되었다. 수행의 그릇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치유학교 동문들이 남긴 감사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맑고 깊은 싱잉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런 일에도, 이렇게도 감사할 수 있는 거구나! 감사와 감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감사일기를 왜 적는지 궁금했었는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혼자였다면 한 달 넘기기도 어려웠을 거다. 1년가량 진행 후 쉬어가기로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나의 복직 생활에 슬기로움을 보태준 땡큐 마라톤과 동반자들에게 고맙다. 다시 시작해볼까 싶다. 나처럼 감사일기를 왜 적으라 하는지 궁금반 의문반인 분들과 직접 느껴보고 싶다. 감사에 담긴 위대한 힘을!





덧. 복직을 앞두고 계신 분에게


무리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준으로 알 수 있는지 막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취침 전 최소 20% 체력이 남은 상태가 되도록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힌트를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복직을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주변 치유 선배님들과 한번 상의해 보세요. 복직 경험담을 묻고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각자의 치유 방식이 다르듯 복직 생활도 다를 테지만 참고는 할 수 있으니까요. 치유동반자님의 복직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복직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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