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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18. 2023

보호자도 울어야 산다

가늠할 수 없는 보호자 어깨의 무게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와 엄마 두 여자와 살아온 남편의 삶이 어떠했을까. 때때로 남편과 아빠가 할 법한 일을 해야 했거나 심적으로 버거운 적이 있지 않았을까. 지난날 중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지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여보, 혹시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있어요? 언제예요?”


그때요.


“아, 아... 그때.. 요?”


남편은 한 치의 쉼도 없이 답했다. 나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귓바퀴 위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갔다. 손가락을 위아래로 여러 차례 움직였다. 고막 근처라 그런지 긁적이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때는 2019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내가 쓴 슬픈 드라마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비틀거리던 중이었다. ‘암은 죽을병도 죽는 병도 아니다'는 뜻을 몰랐던 시기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행동할 기력이 없었다. 치유를 향한 마음 역시도 희미했다. 남편은 회사일을 잠시 멈추고 내 곁 가장 가까이에 머물러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필요한 물품을 직접 알아보고 구매하며 치유 환경을 세팅했다. 그의 간절함과 진심은 행동 하나하나에 담겨있었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눈이 있지만 보이지 않았고, 귀가 있지만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눈치는 보였다. 그래도 마음이 여간 동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녹즙도, 식이요법도,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고 답답하여 도망치고 싶은 마음 가득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같이 갈래요?”


가면 가고 아니면 말라는 제안이 아니었다. 함께 해달라는 구원이었다. 점심 산책은 홀로 다녀오라고 했었기에, 이번엔 같이 가자는 협박에 가까웠다. 그는 말없이 따라 나왔다.


털썩.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집 앞 50m를 남기고 담벼락 옆 차도에서 남편이 멈췄다. 붉은 벽돌을 마주하고 그는 주저앉았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는 저 아래 하수구 쪽으로 떨구었다. 그리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지만 어떤 대화 도중에 그가 멈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 때문인 건 확실하다. 결혼 5년 차 남편이 우는 모습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소리 내어 발산하는 울음. 길 한가운데서 말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남자가 야수로 변할 때 낼법한 굉음 같았다. 어머님도 형님도 이런 모습을 보신 적이 있었을까. 그에게 사과를 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최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일으켜 세워보려 했으나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물에 젖은 빨래 마냥 축 늘어졌다. 일어나려는 의지는 중력과 함께 땅속으로 사라진 모양이었다.


암 진단 이후 눈물은 전부 내 것이었다. 남편은 곧게 선 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단단함을 맡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을 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우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남편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륵. 5m 넘는 붉은 벽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단단하게 서 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내 생각만 하느라 그의 마음을 헤아릴 노력 조차 하지 못했다. 


남편이 멈춰 선 곳은 코너를 돌아 이어진 찻길 한가운데였다. 해도 져서 어둑어둑하던 참이었다. 행여 속력을 줄이지 않고 차가 코너를 돌아 나오기라도 하면 사고발생률이 높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울음소리도 꽤나 커서 동네 사람들이 신고할 법할 정도였다. 160cm 여자 앞에서 180cm 남자가 쪼그려 앉아 울고 있다고 신고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단지 내에 같은 회사 동료가 셋이나 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쌓아온 감정이 폭발했다. 잔잔한 연못에 큰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이 그의 우주가 일렁거렸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의 뜨거운 눈물이 나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 깨었다. 그가 가장 감성적이었던 찰나, 나는 가장 이성적인 상태였다.





그래요, 당신에게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죠.


생각해 보라. 하루 24시간 온종일 둘이 붙어 있다. 암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충격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고, 배우고, 실천할 거리가 쌓여 있었다. 온 집안에 불안감이 차분히 스며들었고, 누가 툭하고 건드려주기를 기다리는 심리적으로 취약했던 순간이었다. 급작스럽게 마주한 암을 인정하고 변화하는데 환우에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호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잠시라도 분리된 공간에서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는 환우 곁에서 냉철한 판단력을 찾으려는 노력도 했을 듯싶다.






암 환우 보호자들이라면 공감할 테다. 보호자가 얼마나 바쁘고 고된 생활을 하는지 말이다. 신체적으로 활동량이 많은 것은 물론, 때론 암 환우 본인보다도 심리적으로 힘듦을 버텨내야 하는 역할이다. 녹즙을 직접 짜 마시기로 했다면 업무량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하루 1L가량을 마시려면 채소량이 소쿠리로 여섯 바구니는 될 것이다. 야채는 박스로 도착한다. 일주일에 기본 두 세 박스다. 야채를 씻고, 소독하고, 말리기를 무한 반복한다. 틈틈이 녹즙 채소 주문도 넣어야 한다. 녹즙기 입구에 들어갈 크기로 당근을 자르고, 밀대를 위에서 아래로 힘껏 눌러 내려야 한다. 한쪽 부분을 뾰족하게 잘라두지 않으면 더 많은 어깨 힘이 요구된다. 케일 잎은 최대한 물기를 털어 돌돌 말아 넣는다. 신선초도, 생강도, 보리순, 레몬도 번갈아가며 넣어야 한다. 유리병을 씻어 말리고 소독하는 일도 추가된다. 직접 짠 녹즙을 유리병에 부을 때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피땀눈물 같은 즙이다. 착즙이 끝나면 찌꺼기를 분리해 버리고 녹즙기를 씻어 말려야 했다. 그에게 숨 쉴 틈이 있었겠는가. 집 안의 모든 단열 창을 닫음 상태로 돌려 닫아 어느 한 곳 바람이 새어나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공간적으로 여유 있는 곳이었지만 나만 바라보는 상대가 늘 따라다니는 공기는 꽤나 무거웠을 법했다.



그가 울어서 나는 안도했다


보호자는 누구보다도 환우와 가까이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환우는 보호자의 무게는 가늠할 수가 없다. 다른 보호자에게서 얻는 공감과 위로가 훨씬 와닿을 것이다. 나로 인해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신선초로만 짜낸 녹즙 마냥 쓰디쓰다. 그 와중에 그가 눈물을 흘리다니 그 쓰라림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물은 몹시 반가웠다. 그도 버거움을 조금이나마 흘려보내는 것만 같아서였다.


"가장 정직하게 눈물을 흘리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토해 내듯이 우십시오."

암 전문의 이병욱 박사는 울어야 산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울어야 삽니다> 1장에서 눈물은 특별한 선물이라 했다. 울음이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는 신이 내린 자연 치유제라는 뜻이다. 그는 눈물과 흘림 속에 어마어마한 치유력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어떤 눈물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흘려야 하는지도 덧붙인다.  특히 남자는 여자보다 더 많이 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남자의 눈물 분비샘 꼬리는 여자보다 크기 때문에 더 많은 눈물을 만들 수 있고, 또한 남자의 눈물에는 면역 글로불린 A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생리적으로 보더라도 남자들이 눈물을 더 많이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라고.



그 뒤로 남편의 눈물은 볼 수 없었다. 괴성 섞인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보호자로서 그는 다양한 치유 활동을 제안하고 이끌어주었다. 남편의 정성을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한 번 두 번 경험이 쌓이면서 치유 생활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남편의 눈치를 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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