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으앗, 암 걸릴 것 같아!

암 환자 앞에서 말해버렸다면

회사 복귀 후 새로운 얼굴들 사이로 간간이 반가운 옛날 동료들이 보였다. 개인 메시지로 복직 축하를 한 아름 받으며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넷이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한 분이 과거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내던 참이었다.


"그때, 완전 암 걸릴 것 같았잖아요."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거울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동그래졌을 거다. 잠시 감춰보려고 동공을 왼쪽 오른쪽 위아래로 굴렸다. 그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당황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두 분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만 불편한 건가.






붉은 벽돌이 다시금 떠오른다. 바야흐로 암 진단받고 한 두 달쯤 지났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함께 산책 길에 나섰다. 종달새 모드가 되어 이러쿵저러쿵 쉴 새 없이 이야기하던 중 얼음 상태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뱉은 문장 때문이었다. 오른쪽 뺨을 찌르는 눈빛 레이저에 코끝이 간지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려 했으나 그가 멈추어 섰다. 능구렁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할 판국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uhh................"


"암 걸릴 것 같다니요. (멈춤) 이제 그런 말은 담지 않기로 해요."



일상에서 이따금씩 쓰고 듣던 표현이었다. 주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임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했다. 나를 가엾이 봐달라고, 공감을 구하는 시그널이었다. 암 환자가 암 걸릴 것 같다고 말하다니. 이게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보호자로서 듣기에 불편했겠다. 바로 반성 모드로 진입했다. 대체가능한 표현을 떠올려 보았다.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다', '답답하다', '화가 난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같은 표현으로도 충분했겠다. 당시엔 웃기면서도 씁쓸했는데, 충격이 컸는지 그 이후로 무심코라도 부정적 어휘를 사용한 적이 없다.


건강성 회복을 저해하는 요소는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채식위주 식사와 규칙적 생활만으로는 건강을 좀 챙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암은 두려워할 병도 아니지만 만만히 볼 수도 없다.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생각 습관, 말 습관 역시 바뀌어야 한다. 문장, 표현, 단어 하나까지 건강해야 한다.




말이 파동이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을 들어봤다면 알 것이다. 말 뿐인가. 우주 만물이 파동이다. 진동하는 에너지(氣)인 셈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에너지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주파수로 진동하며 살아간다. 주고받는 말속에 에너지 공명을 일으키게 된다. 내가 보내는 부정적 에너지가 나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떨리며 전달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옆 사람이 미소 담긴 인사를 보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부정적인 말습관은 잠재의식에 입력된 부정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표현된다.


신생물학을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학자 브루스 H. 립턴 박사가 말했다. 세포생물학자이자 의학자이기도 한 그는 저서 <믿음의 생물학>에 생각이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비약적이겠지만 다섯 줄로 요약해 보겠다. 자신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나는 어떤 정부인가? 나의 국민(세포)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하고 말이다.


우리는 5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연합체이다.

세포 하나도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우리의 생각이 50조 개의 세포를 지배하는 중앙정부다.

좋은 정부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행복하고 건강할 것이다.

우리의 몸도 좋은 생각과 마음이 지배하면 행복과 건강을 누리게 되고, 부정적이고 나쁜 마음이 지배하면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다시 '암 걸릴 것 같다'는 동료의 말하고 멈칫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본다. 그도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심결에 뱉은 말이었을 거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듯싶었다. 그래서 더욱 생각과 말의 파급력을 전하고 싶었다. 건설적 피드백은 일대일로 하는 편이 맞겠다 싶었다. 동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며 나의 지식을 뽐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요청하지 않은 피드백이 효과적인 경험은 거의 전무했기에. 그 이후로도 전하지 못한 피드백으로 남아 있다.


그때 부리지 못했던 오지랖을 글 속에서나마 부려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우리 생각 습관과 말하는 습관까지 모두 건강하게 바꾸어 보자! 좋은 중앙정부가 되려는 모든 분들에게 열렬히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전 04화 두 번째 복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