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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입양 상담 모두 거절당해도 괴롭지만 않은 이유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 겁니다

입양 상담 전화 (1)


오후 5시 회사 내 리더들과 평가제도 개선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책상을 흔드는 진동을 뒤늦게 느꼈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보니 입양원이었다. 이미 두 차례 전화를 놓친 상황. 세 번째 전화를 받지 못하면 언제 또 연락이 닿을까 싶어 허리를 숙여 살금살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상담사는 가장 먼저 입양 절차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인지여부를 확인하며 진행 의사를 확인했다. 뒤이어 입양 동기와 입양원을 알게 된 경로를 물었다. 거주지역, 부부 학력, 생년월일, 혼인일자, 결혼생활 기간, 친생자녀 유무, 양가 부모 지지여부 등을 확인했다. 재산과 부채 정도도 구체적으로 물었다. 현금성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답해야 했다. 거주하는 곳은 자가인지, 아파트라면 몇 평인지, 준공일자는 언제인지, 기준 시가와 대출은 어느 수준인지 속속들이 알아내었다. 부부 외 동거인이나 반려동물 여부까지도 꼼꼼히 체크했다. 한두 번 상담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질문이지만 미리 공부하며 예상한 수준이었다. 답을 알고 있기에 OMR 카드 답안지에 마킹하듯 순조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말과 동시에 우리 부부의 건강문제를 물었다. 올 것이 왔다. 암 경험자라는 한마디에 돋보기안경을 쓰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암 진단 시점, 암종, 가족력, 치료 내역과 결과를 공유했다. 현재 추적관찰 중이고 수술 2년 경과도 좋다고. 6개월 주기로 검진받을 예정으로 1년 뒤 산정특례 종료 가능성까지 설명했다.



전화 상담은 더 이상 어렵겠습니다.



건강상 이슈가 없다는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른바 '5년 완치 증명서' 말이겠다. 서류 없이는 전화 상담 역시 진행 불가라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나, 행여나 전전긍긍 쌓아둔 마음이 한순간에 터져 흘렀다. 사르륵


"상담 일정까지 1년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전화 상담이라도 먼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우리 사이에 더 이어질 대화는 없었다. 상대방은 내가 먼저 전화를 끊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목구멍을 가득 채워 궁금한 점을 물을 수가 없었다. 새어 나오는 쉰 목소리로 알겠다며 빨간 종료버튼을 눌렀다. 경고등 마냥 새 빨간색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종결됩니다. 그래도 누르시겠습니까?' 하고 경고하는 듯했다.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쓸 기세로 휴지를 뽑아 입을 막았다. 창밖 빌딩사이로 미세먼지 가득 낀 하늘을 향해 꺼억꺼억 소리가 새어나갔다. 통화 시간은 짧았지만 무너져 버린 마음을 추스르느라 시간이 걸렸다. 시뻘건 토끼 눈을 퉁퉁 부운 눈꺼풀로 덮은 채, 콧물을 재차 흡흡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고개를 숙인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들어간 지 10분 채 되지 않아 회의는 끝났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높았던 기관이었던 만큼 좌절감이 비례했다. 아이가 없는 삶을 꿈꾸어야 하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전날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보육하는데 건강상 이슈가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가능할지 묻고 싶었다. 오로지 완치 증명서만 되풀이하여 말했다. 암 진단일자가 아닌, 수술일자 기준으로 5년이라고 했다. 공식적인 '완치 증명서'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입양 상담 전화 (2)


두 번째 입양 기관 전화는 재택근무 중에 걸려왔다. 삼 세 번 심호흡 후 전화를 받았다. 이번 상담사는 입양 절차와 소요 기간을 두고 차근차근 설명부터 꺼내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했다. 입양을 희망하는 가정의 수가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외로 입양 보내지는 아이들이 많다. 다행인 일인 듯싶으면서도 씁쓸했다. 상담사는 입양 동기와 더불어 개인 정보를 물었다. 전화 1에서 받았던 질문들과 99% 같았다. 재산과 부채 규모 질문을 받았을 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건강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담담히 전달했고,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상담 보류였다. 건강상 이슈는 기관 내 담당자 판단범위가 아님을 설명해 주었다. 의사의 소견을 따르는 영역이었다. 공식처럼 정해진 서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년 정부 지침이 변경되기도 하여 현시점에서 확답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단다. 무엇보다도 입양 기관에서는 아이들의 입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달라 말했다.


"입양을 준비하던 부부 중 중도포기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해요. 두 분께 시간이 생겼으니 부부간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시면서 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추후 다시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상담을 종결했다. 왜 전화 상담을 이어가기 어려운 지 설명을 해주시니 나 역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긍과 위안이 뒷받침되는 대화였다. 상담과 취조는 한 끗 차이였다. 집착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조급한 마음에 내 입장만 생각했구나 반성했다. 불투명하여 답답했던 거울을 닦아낸 듯, 마음도 맑아졌다. 흘러가는 대로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뜻대로 하소서.'






준비 기간이라 생각하니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1순위는 체력이다. 트레이너 선생님 도움 하에 헬스를 시작했다. 버킷 리스트 중 아이로 인해 제약이 생기는 일을 골라내었다. 지금 해볼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해보기로 했다. 덕분에 뒤로 미루는 삶을 정리했다. 삶의 우선순위 역시 명료해졌다. 단칼에 베인 괴로움과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마음의 근력이라 불리는 회복탄력성이 추가되었다. 입양을 위한 준비로 시작한 일들로 삶이 충만하고 풍성해지는 중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가 있어야만 가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그저 다른 차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둘은 이미 행복하다. 여건이 된다면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가정의 품을 내어 주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고, 성장을 응원하고, 존재를 기억하는 관찰자로 인연이 맺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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