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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퇴사, 그리고 속초살이

자연인 자연으로 들어가다

복직 후 3개월이면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회사로 복귀해 보니 여전히 사람과 조직에 관심과 사랑이 가득했다. 맡은 역할에 에너지를 쏟으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쉽게 몰입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음을 10년이 지난 후에야 재발견하기도 했다. 운이 좋았다. 그럼에도 '퇴사' 키워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변 선후배에게 퇴사 고민을 꺼낼 때마다 퇴사하려는 이유가 달랐다. 나도 내 속을 알지 못하겠더라. 치유 생활을 돕는 역할에 몰입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한번 사는 인생 그간 못해본 일을 모조리 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뚱맞지만 불현듯 떡 만드는 방앗간 일이 해보고 싶었다. 일명 치유 방앗간! 메뉴도, 운영 방식 아이디어도 자동모드 마냥 떠올랐다. 회사 동료들이 보내주는 관심과 피드백도 그저 즐거웠다. 마음이 떠났다는 판단은 쉬워졌는데 결단은 곱절로 어려워졌다.



배부른 고민도 괴롭다


시시각각 변하는 IT업계의 특성상 위태로움은 늘 있었다. 조직 내로 다시 돌아왔을 때 든 생각은 '이곳은 참 따뜻한 곳이구나!'였다.


매월 약속한 날짜에 꼬박꼬박 급여가 들어온다. 주기적인 수입이 끊겼다 다시 생기니 심리적 안정감이 단박에 올랐다. 이것 만큼 큰 유혹이 또 있을까.


게다가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축하와 환영도 받는다. 원격근무도 가능하고, 몰입에 용이한 오피스 환경도 제공된다. 도움을 구하고 배움을 나눌 동료도 있다. 마침 새로 합류한 리더에게 배우고 싶은 점도 많았다. 배부른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겠다고? 왜?






암과 죽음을 가까이 마주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월급은 곧 나의 시간과 에너지에 따른 대가였다. 하루 8시간,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개인 시간은 두 세 시간남짓 되었다. 주말 동알 집안과 나를 돌보다 보면 월요일이 코앞이다. 만나는 분들마다 쉬엄쉬엄 하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쉬엄쉬엄' 난이도가 월등히 높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재택근무일과 오피스 출근일을 대비되니 알겠더라. 8시간 근무는 할만 했으나, 대중교통 이용 시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었다. 복직 후 3개월을 기점으로 아침 기상 시간이 뒤로 미뤄졌다. 체감하는 무게도 달라졌다. 시간과 에너지가 나의 전부인 것을! 나의 전부를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치유 생활 중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달라진 영향이 컸다. 때마침 입양 상담 에피소드를 겪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정리되니 명료해졌다. 퇴사 고민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그만 멈추고 싶었다. 거듭된 퇴사 면담 끝에 퇴사를 확정 지었다. 복직 7개월 차였다.






자연인 속초로 돌아가다


속초 세컨드하우스 임대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남은 2개월을 꽉 채워 보내러 속초로 향했다. 아침저녁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본다.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낸다. 매일 다른 시각,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내 감탄 실력이 배로 늘었다. 동쪽으로 가면 동해 바다를, 반대편에는 청초호를 만난다. 두 다리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면 설악산이다. 산행 없이도 영랑호 출렁다리 위에서 그림 같은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도 있다. 걸어 다니며 운동과 일광욕 동시에 가능하다. 미세먼지 없는 촉촉한 공기는 기본이다. 스트레스가 어디서 생길 수 있으랴. 얼굴 어디에도 주름질 일이 없다. 치유의 하루는 애쓰지 않아도 완성된다.




“치유님, 얼굴이 참 좋아 보여요!”


"그런가요, 아무래도 제가 변화를 만들어 낼 에너지를 얻은 모양입니다."


하얀 거짓말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의 변화가 피부로 와닿았다. 구릿빛 얼굴에 광대뼈 주변으로 진해진 주근깨 하나하나 전부 반짝였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에너지가 다시 거꾸로 솟아 나오는 듯했다. 손끝 발끝까지 에너지가 돌았다. 걷기만 하던 산책길 위에서 달리고 싶어졌다. 해보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남해 바다는 어떤지 궁금해 속초 세컨드하우스를 정리하고 목포 여행을 다녀왔다. 브런치 작가님들과 공저 글쓰기 기획에 참여해 살림 이야기를 쓴다. 난생 처음 헬스 퍼스널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한 달 살기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현재 지리산에서 이 글도 쓰고 있다. 하나씩 시도하며 이룬 것만도 벌써 다섯 가지라니, 특급 칭찬할 일이다. 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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