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이럴 수 있다고요?

소변 배출 속도와 속력을 계산하다가

자궁과 방광이 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자궁경부암 수술 중 방광 부근 신경이 건드려진 모양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라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소변이 멈췄다. 요의감을 제때 느끼지 못했다. 변기에 앉아도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배뇨장애였다. 초기 회복 기간에는 소변길을 넓혀 주는 약도 복용하고 자가도뇨로 소변을 처리했다. 매일 대여섯 번 소변 양상을 기록했다. 자가 소변량은 늘고 자가 도뇨량이 주는 양상이 보였다. 담당교수 역시 좋아지는 추세를 확인하곤 약 처방을 중단했다.


자가 소변으로 소변을 해결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고 나와 손만 씻으면 끝이다. 1분이면 충분하다. 자가 도뇨는 준비부터 처리까지 거진 10분은 소요된다. 위생을 신경 쓰느라 순간 집중력도 요구된다. 자칫하면 감염 사고로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소변을 보면서 요도와 입구, 방광의 수축을 가만히 느껴본다. 지난날 동시간대 대비 양은 비슷한지, 찌릿함은 없는지, 배출 속도와 속력은 어떤지 살핀다. 돌아서서 변기를 확인하는 일은 하나의 정례의식이 되었다. 색상, 거품, 이물질, 탁함, 냄새 유무를 보는 것이다. 냄새와 탁함 정도가 눈에 띄었다. 불투명한 노란색 소변은 삼십 년간 맡아온 소변 냄새가 아니었다. 깊은 산속 마법사의 약병에 있을 것만 같은 어두컴컴한 냄새였다. 자가 소변만으로 온전히 배출되지 않아 박테리아가 번식한 결과였다. 요의감을 느끼지 못해 소변 타이밍이 늦어졌거나, 잠시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참기라도 하면 곧바로 심해졌다. 자가 도뇨를 다시 병행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소변과 소변 사이 깨어있어야 했다. 소변을 배출하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한 번 길게 소변을 본 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 또다시 소변이 나왔다. 약간 힘을 주어야 했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여야 한다. 서 너 차례에 걸쳐 소변을 보는 삶이지만 행복했다. 사람과 기구 도움 없이 직접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침 기상 후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다. 밤새 쌓인 독소와 함께 방광에 남은 소변을 빼주어야 한다. 하루 중 가장 진하고 탁한 소변을 만날 때다. 요도가 가장 좁아져 있을 때라 소변이 가늘고 약하다.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와 같은 여유가 필요하다.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다. 두 번째 소변부터 확연히 투명해지고 냄새도 밝아진다. 내 마음도 함께 맑아지는 것 같다. 속으론 일희일비할 것 없다면서 입가엔 미소를 띤다. 언행불일치다. 1년 간 소변 양상은 매일 비슷했다.


그 뒤로 6개월 지났을 무렵, 아침 첫 소변이 심상치 않았다. 차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을 테다.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 뿐. 복병이었던 소변이 많이 좋아졌음에 감사하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사회생활도 복직도 괜찮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러나 얼마 후 회사 건강검진 소변검사 결과 박테리아가 검출되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전히 세균뇨가 있다니!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걱정을 해소하고자 결과지를 들고 가정의학과로 찾아갔다. 자궁암 수술 환자 중에 배뇨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며 무증상이라면 괜찮다 했다. 세균뇨는 검사 때마다 나올 테니 검사 결과 자체를 보지 말라는 첨언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퇴사 인사를 모두 끝내고 속초로 왔다. 속초 해변 모래사장을 따라 맨발로 걸었다. 바닷물에 젖은 덕분인지 모래 한 알 한 알 둥근 정도가 모두 느껴지는 듯했다. 땅에 내딛는 오른 발바닥 주름사이로 모래알이 들어오고, 왼 발바닥은 뒤로 뻗는 찰나 모래알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카락 굵기처럼 작고 부드러운 모래였다. 2년 전 수술 후 요도 근처 찌릿거림과 빈뇨가 느껴질 때면 속초 해변으로 뛰어나와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모래사장을 걸으면 금세 증상이 호전되어 편안해졌는데... 신기했지요.

근데.. 잠깐만요, 어랏?

여보, 모래알이 이상하지 않아요???

아까 분명 보들보들이었는데, 갑자기 툭 거칠어 지네요?"


발바닥에 닿은 모래알 감촉이 달라졌다. 갑자기 굵고 거친 용병단을 만난 것처럼. 뒤돌아 내가 걸어온 모래길을 유심히 바라봤다. 굵은 모래는 한참 전부터 밟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변하는 순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유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 순간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까닭에 순간순간 알아차림 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밀한 알아차림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모르고 지나쳐버릴 법하다. 더구나 매일 좋아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론 후퇴하기도 한다. 괄약근에 들어간 힘이 쭉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실망하긴 이르다. 중대한 문제가 없어도 하락세를 보일 때도 있다. 산행을 할 때 오르막길만 있지 않은 것처럼, 오르 내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높은 고도에 다다르지 않던가.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살피고, 방향성을 재정비할 때는 아닌지 점검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된다. 얼마나 고마운가! 느슨해진 긴장감을 조여주기도하고 말이다. 나의 경험담만이 아니다. 치유를 이룬 선배들도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본인 이야기가 되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몸은 이 정도 하락세를 견딜 만큼 단단해졌으니, 마음 근육도 단단해지라는 신호로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싶다. 치유 덕후, 고수, 선배들에게서 내공을 느낄 때가 있다. 유연한 단단함이랄까. 모두 이런 업 앤 다운 여정을 겪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과정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는지 추측해 본다.



"누군가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



분명 당신에게도 '어랏?'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매일 기록을 남기다 보면 알아차림에 도움을 얻게 된다.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받는다면 주요 수치 흐름을 하나의 표에 적어 흐름을 확인해 볼 수 있겠다. 거창하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1분 간 호흡 횟수를 보며 과호흡을 하고 있진 않은지 살필 수도 있다. 느낌 같은 주관적인 기록도 좋다. 식사 후 소화되는 느낌,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 아침저녁 기상 전후 컨디션의 변화까지 가능하겠다. 매일 같은 내용을 쓰게 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괜찮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멈추어도 좋다. 알아차림 한다는 자체만으로 훌륭하다. 그리고 기억하라. 수치는 수치일 뿐이다. 흐름을 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그 순간을 상상하며 미리 외쳐본다.


"야~호!"



이전 08화 퇴사, 그리고 속초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