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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암은 아니래요'가 암보다 더 무서운 이유

하마터면 암 환자가 될 뻔했을 때가 진짜 중요한 시기다

주황색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적이 있나요?


양성인지 음성인지 모를 종양을 발견하거나, 혈액검사 상 정상범위를 훌쩍 뛰어버린 종양표지자 수치를 확인하는 경우다. 소견서를 들고 종합병원으로 향한다. 초진 예약부터 정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외래까지 빠르면 한 달이다. 애타는 시간이다. 초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거나, 슬그머니 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면 닥쳐올 일에 염려되어 잠을 설치기 일쑤다. '암만 아니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한다. 염원을 이루어주면 앞으로 건강을 잘 챙기겠다고 거래라도 하고 싶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대망의 디데이. 주먹 쥔 손이 미끌거린다. 손금 사이로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진료실 안에는 마우스 클릭 소리만 울려 퍼진다. 교수는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의 눈빛을 따라 내 동공도 흔들린다. 모니터 가까이 고개를 쑥 내밀기라도 하면 심장 박동에 모터가 달린다.


"암은 아닙니다. 그런데 #$%^&*()_..."


하마터면 암 환자가 될 뻔했는데 아니란다. 그다음 이어지는 말이 제대로 들릴쏘냐. 하늘도 함께 기뻐하는지 한 줄기 빛이 내린다. 동공을 시작으로 목과 척추를 따라 힘이 풀린다. 이내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오른다.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빨간색 경고등이 아니라니! 그날밤 축배를 들고 깊은 잠에 든다. 참 오랜만이다.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를 만났으니 말이다. 정말이다. 어쩌면 암과 같은 빨간색 경고등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전하고 싶다. 가족 중에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걱정이 앞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족 간 전달력은 약하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려 강력할 수 있다. 부러움과 노파심이 반반 섞인 애정의 소리, 의사는 절대 해주지 않는 소리를 해보겠다. 최대한 짧고 굵게!




주황색 경고등의 의미 


고혈압과 같은 질병으로 처음부터 대학병원을 찾진 않는다. 웬만한 노랑불에서 소견서를 받아보는 일은 드물다. 소견서와 함께 종합병원에 다녀왔다면 빨간불에 가까운 주황색 불일 확률이 높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심각성을 알았다 해도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이 있다. 눈만 뜨면 자동차 계기판 같은 화면이 보이면 좋으련만! 주황색은 녹색이 아니다. 건강에 좋다는 특정 음식, 장소, 움직임에 관심 가졌으니 충분하다 생각했다면 주황색 경고등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빨간색 경고등이 켜지기까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계기판에 들어온 노란색 경고등은 일종의 경고 신호로 안전에 위협이 될 때 점등된다. 짧은 거리 주행은 가능하지만 점검을 필요한 상태다. 잠시 멈추어 서서 문제를 발견하고 온전히 해소하면 노란불은 꺼진다. 우리 인간도 비슷하다. 이전과 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한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다. 검진을 받고 문제를 발견했다면, 온전히 해결해야 한다. 본인 문제의 근본을 치유해야 끝이다. 

    


출처: 자동차 계기판 경고등 의미, 도로교통공단, http://news.koroad.or.kr/koroad/vol42/sub0202.php



암이 아니면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알고 보니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이 이미 같은 상황을 겪었다면 더욱 그렇다. 암만 아니길 염원하며 앞으로 건강을 잘 챙기겠다던 다짐을 새카맣게 잊고, 전과 동일한 일상으로 복귀하기 부지기수다. 암이라는 빨간색 경고등을 받고도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는 게 사람이다. 어쩌면 주황색 주의등은 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다. 혹여 증상을 해소하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라면 난이도는 최상으로 올라간다. 증상이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고혈압, 진통제 같이 증상에 따라 대처하는 대증요법은 근본 치료가 아니다. 눈속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 나이에 따른 신체 변화가 그저 자연스럽다고 치부하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자. 증상이 호전되는 틈새에 본질적인 원인을 정비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약 봉투 무게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중년, 노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 (출처: 그림책 <때>, 글/그림 지우 | 달그림)



심각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살아온 방식 중 무언가 오랫동안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알아차릴 때다. 식습관부터 생활 습관, 말과 생각 습관까지 점검해 볼 때다. 셀프 진단을 바탕으로 계획과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할 때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먹고, 자고, 싸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해본 사람은 안다. 말처럼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영역만 챙긴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살아온 방식 전체를 두루 살펴보자. 예로 건강식은 녹색불일 때 챙겨야 의미가 있다. 주의 단계는 건강식보다 치유식에 가까워야 한다. 부족한 것보다 더하는 것이 현명할 때다. 오래 동안 함께할 가족이 있다면, 자녀들의 결혼, 손자녀 돌봄을 약속했다면 더더욱 지혜를 발휘할 때다. 3개월 단위로 점검해 보길 바란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재점검을 고려해 보라. 진단-계획-실천 삼박자 중에 소리 나지 않은 곳이 어디인가.


짧고 굵게 하겠다던 소리가 길어졌다. 스크롤을 올려 보니 '~해야 한다'는 잔소리 투성이다. 나와 같은 무지함에 고통받는 영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가 때론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티끌만큼 이나마 당신의 삶과 변화에 점을 찍었기를 바란다. 이윽고 당신에게 녹색등이 켜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자.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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