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암 진단 후 전업치병의 진짜 의미

두 번째 전업치병을 겪은 후에야 알게 된 것들

내 직업은 전업치병가라고 소개했던 때가 있었다. 오롯이 몸과 마음을 돌보며 면역체계가 온전히 회복되도록 집중한다는 의미였다. 유기농 식재료로 차린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며, 업무와 스트레가 없는 환경을 두고 전업치병은 신선놀음이라 말씀하는 치유 선배들도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좋다는 건 다 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꾸할 거리는 없다. 신선은 맞다 쳐도 놀음은 '글쎄올시다'였다. 실제로 노는 것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쉬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전업치병 기간


첫 번째는 암 진단 직후였다. 표준치료 없이 곧바로 자가치유에 올인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충격에서 벗어나려 바등거릴 때이자, 정말로 치유될 수 있을지 의심이 확신을 짓누르던 때였다. 꼭 나아야 한다고, 빨리 극복하겠다는 의지에 교감신경이 부교감신경보다 우위에 있었을 때였다. 심리적인 압박감 속에서 바삐 돌아가는 치유 생활을 놀이로 받아들이기란 무리였다. 게다가 치병 기간이 마이너스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한창 사회활동을 할 나이대였던 것이 한몫했다. 주위 친구는 물론 동생들까지 사회생활, 취미 생활, 결혼과 함께 새 가정을 꾸리는 생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건강을 되찾으면 그보다 더 큰 소득이 없다고. 건강한 몸을 되찾으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모두 맞는 말이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아가고 있었을 텐데, 멈추어 서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멈춤이 아니라 후퇴하는 건 아닐는지 조바심도 일었다.



진짜 이래도 되나?



이후 수술 치료를 받고 회복하면서 두 번째 전업치병 기간을 가졌다. 1차적으로 암세포 덩어리를 제거했다는 사실에 심리적 부담감이 제법 줄어들었다.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치유 생활에 전념했다. 몸이 회복하고 자가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는 생활은 수월했다. 생계 때문에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치유 생활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남편도 있었다. 그러나 휴직 기간이 재직 기간보다 길어지면서 복직 여부를 두고 의구심과 부담감이 커졌다. 놀아본 자가 놀 줄 안다던가. 놀이보다 생산적인 일에 더 관심이 쏠렸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습관이었고 심리적인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을 하고 심리적 부담감을 한 꺼풀 벗겨 내었다. 그제야 선배들의 '신선놀음'이란 표현이 이해될 것도 같았다. 사회생활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예상하지 못하거나 감당 가능한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서는 등 치유적합적이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렇다. 회사 생활로 복귀해 보니 전업치병 시절이 좋았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내게 온전히 쏟았던 황홀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업치병 덕분에 슬기로운 회사 생활이 가능했다. 치유 생활 중에 배우고 익혔던 명상 수련,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피어오르는 모든 감정과 기억을 그저 바라보는 연습 덕분에 사회생활 중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후퇴한 줄만 알았던 시간이 내공을 쌓는 시간이었다니! 삶을 충만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다니!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놀음은 아니지만, 놀음처럼!"


모든 순간이 다 의미 있고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완벽한 시간에 내게 온다는 확신에 확신을 더했다. 전업치병을 선택하고 쉬었다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놀이라 생각하고 즐겼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미 지난 이야기이고, 또한 지나고 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마주하는 모든 순간 기억할 테다. 모든 순간은 전부 의미 있고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마주한 이상 즐기는 방안을 기꺼이 선택해 보기로 말이다.



암(또는 암 전단계, 유사 중증질병)을 진단받았다면


최소 3개월은 꼭 전업치병 기간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3개월도 어렵다면 적어도 1개월 정도라도 좋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멈추어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 아들 딸, 과장 부장도 아닌 오로지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이다. 신선놀음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완벽한 시간에 온다는 사실만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전 09화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이럴 수 있다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