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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22. 2023

암 재발률이 갈리는 길목에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입양기관입니다. 김OO 님 맞으신가요?

2019년 자궁경부선암을 진단받고, 2021년 광범위자궁적출술을 받았다. (진단일과 수술일 사이 텀이 있는 이유는 <스물아홉에 시작한 암 치유과정기> 편에 담아 두었다) 난소를 살렸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수술 치료를 받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희망했으나, 자궁을 떼어내어 임신과 출산은 불가능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부터 입양에 관심이 높았다. 배 속에 품고 낳는 시간은 보육 기간에 비하면 5%가량 되는 찰나다. 괜히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 칭하겠는가. 수술 결정 이후 입양 관련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인터넷 카페도 가입했다. 우리 부부는 각자 공부한 내용을 나누며 저녁식사 자리에서 솔직한 대화를 이어왔다. 입양 이후 달라질 삶을 상상하고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토론하기도 했다. 새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꽉 붙잡았다. 간절함은 남기되 입양 자체에 집착하는 순간은 경계했다. 그 순간 입양이 삶의 목표가 되는 모순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양친의 자격 조건

출처: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센터 홈페이지


양자를 부양함에 있어 충분한 재산이 있을 것

양자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양육과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함

아동학대·가정폭력·성폭력·마약 등의 범죄나 알코올 등 약물중독의 경력이 없어야 함

양자가 될 아동이 복리에 반하는 직업이나 그 밖에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함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양친이 될 사람의 나이 범위는 25세 이상으로서 양자가 될 사람과의 나이차이가 60세 이내여야 함

양친이 되려는 사람은 입양의 성립 전에 입양기관 등으로부터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소정의 교육을 마쳐야 함



지난 2년 간 입양원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국내입양 절차, 자격요건, 관련 법률을 읽고 또 읽었다. 입양 절차라면 구구단을 읊듯이 술술 설명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기본적인 뼈대만 잡는 느낌이었다. 택배에 수신자 이름, 주소, 상품명은 적혀 있지만 정작 상품이 없이 받은 상자 같았다. 온라인상으로 확인한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암 경험자라는 특이사항이 붙으니 더욱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최근 정인이 사건으로 입양 관련 이슈가 뜨거웠다. 입양특례법 개정안 입법 추진 뉴스도 연이어 들렸다. 실제 돌아가는 현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입양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입양에 관심 있거나, 진행 중이거나, 입양자녀를 보육하는 중이거나, 친생자녀를 키우고 위탁부모 역할을 자청하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가입 인사글에서 대략적인 입양 동기를 엿볼 수 있다. 몇 년 간 임신 시도 끝에 불임을 선고받거나, 자궁적출로 임신이 어렵게 되거나, 입양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주였다. '암', '암환우' 키워드를 넣어 검색했다. 암 환우 중에도 입양을 한 분들을 발견할 때마다 구독버튼을 눌렀다. 많지는 않았다. 카페에는 입양원 상담 중 상처받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왔다. 워낙 간절한 분들인지라 상대가 건넨 단어 하나, 목소리와 표정까지 예민하게 느꼈으리라 짐작해 본다. 상처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도 무척 조심스러웠기에 내 눈에 관련 글이 유독 띈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 부부는 입양할 수 없다'는 확인사살을 받기 몹시 싫었다. 품었던 희망이 사르륵 부서져 내릴까 두려웠다.





입양 절차의 첫걸음은 민간기업 입양원 상담이다. 보통 홈페이지에 입양상담 문의와 연락처를 남기면, 담당자가 순차적으로 연락을 준다. 전화 상담을 거쳐 오프라인 상담으로 연결된다. 상담 요청자 수가 많아 전화 상담 자체도 한 달 가까이 지연되기도 한다. 오프라인 상담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후에 가능하다. 상담을 마친 이후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된다. 부모교육, 가정방문, 아동 첫 만남, 결연을 거쳐 입양원에서 가정법원 허가신청을 넣기 전까지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법원에서 입양을 허가한 후로도 아동을 인도받기까지 여전히 많은 절차가 남아 있다. 상담부터 친양자 신고까지 최소 1~2년은 걸리는 모양이었다. 물 흐르듯 별 탈 없이 잘 흘러간다면 말이다. 아동 성별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고도 한다. 혹여 여자 아이를 희망한다면 1~2년이 추가된다고 봐야 했다. 우리는 수술 이후 회복과 추적검사 결과를 살펴야 했다. 출발선상이 뒤로 확 밀린 듯이 느껴졌다. 하루 한 달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의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수술 후 만 2년이 흘렀다. 담당 교수는 이맘때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외래 때마다 했던 말이었다. 재발 환자의 80%가 2년 이내에 발생한다는 통계 때문이었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교수도 이내 미소를 띠며 수고했다고 격려를 보냈다. 추적관찰 주기를 3~4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해 주었다. 좋은 시그널이었다. 1년에 두 번만 외래를 보면 된다니! 어깨 위로 하늘색 스펀지 같은 자신감 뽕이 얹어졌다. 수술일로부터 2년이지만, 암 진단일 기준으로 4년 가까이 되었다. 다음 해 산정특례기간 종료를 앞두고 한발 내디뎌 보기로 했다.


눈여겨보았던 입양원 두 곳 홈페이지에 전화상담 요청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입양을 희망하는 부부입니다.

결혼한 지 만 8년 조금 넘었으며
슬하 자녀는 없습니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입양 논의를 해왔고
양가 부모님도 저희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입양 상담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암 경험자 내용은 넣지 않았다. 최소 전화 상담은 받아보고 싶었다. 입양원 연락처를 찾아 미리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받을 수 있도록.


며칠 후 전화기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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