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묻다
‘치유’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 말해놓고, 한 글자 적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뭔가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달까. 알 수 없는 저항감에 사로잡힌 듯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글을 완성하면 지금의 삶이 끝날 것만 같아 자꾸 미루고만 싶었다. 나의 존재를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여름 퇴사 후 속초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에너지 충전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추워지기 전까지 공기 좋고 물 맑은 지리산에서 보내고 싶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일사천리로 내가 딱 원하던 온돌방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채식주의자였고, 유기농 밭을 가꾸며, 장을 직접 담가드시는 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나와 관심사가 똑같을 수가!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을까 싶었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마치고, 해 질 무렵 아궁이 앞에서 만났다. 온돌방에 불을 지피는 사장님을 바라보며 몇 차례 데이트를 즐겼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신기했다. 학산 선생님과 살림행공을 수련하셨고, 명상 공부를 하신다고 했다. 어쩐지 사장님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글을 쓰셨다는 것 아닌가! 글 쓰러 들어온 내게는 이보다 더 멋진 인연이 없었다.
일주일 정도 집중 쓰기 시간을 보냈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곤 글을 쓰는데 집중했다. 남편이 놀러 와도 카페로, 다시 숙소로 글을 쓰러 다녔다. 그렇게 두 번째 브런치북 <서른넷 5년 차 암환우의 치유과정기>를 완성했다.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하실 사장님에게도 링크를 전달했다. 그날 밤 해방감을 만끽하며 늦게까지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던 때였다.
"카톡!"
예상치 못한 시각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