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유를 이루었다
닉네임 ‘치유’는 2019년 여름에 처음 사용했다. 5년 전이다. 시작은 ‘이완과 치유’였다. 암 진단 후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유였다. 그 첫걸음으로 ‘이완’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후 블로그를 시작하며 좀 더 간결한 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궁극적인 목표였던 ‘치유’를 선택했다. 미래지향형 관점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 몸의 치유체계를 공부하며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과거처럼 '치유함을 목표로 삼아 달성해야 하는 대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표로 둘 수는 있다. 그 목표를 바라보는 마음과 방식을 바꿔야 했다. 마음 급히 돌진하는 중에는 치유는 일어날 수 없다. 엑셀에서 발을 떼고, 제대로 된 브레이크 사용법을 배워야 할 때였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장거리 경기에서는 매 순간 알아차림이 절실했다. 지금 이 순간, 치유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완성되는 듯했다.
치유는 자유다
나는 치유를 이루었고, 건강한 삶에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과거형도 아니다. 치유는 삶의 일부이기도, 지금 이 순간과 같다. 치유는 곧 자유이기도 하다. 치유에 치읓 윗부분이 자기다움을 찾아 옆으로 옮겨간 것처럼 느껴진달까.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자, 알아차림과 발견의 연속이다. 짜릿한 해방감이기도 하다. 스스로 구속됨에서 벗어나 활개 칠 때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대중이 단어를 인식하는 뉘앙스를 무시하기엔 고민스러웠다. 언제나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어느 날 봉은사에서 치유학교 동문님을 만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치유란.. 치유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