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을 앞두고 가장 걱정되는 것
입양 부모 에세이 중, 입양을 앞두고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 무엇인지 묻는 문항에 '체력'이라고 답했습니다. 신생아 입양은 입양이 아니라, '육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짐과 동시에 걱정이 몰려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요. 육아 경험이 전무하여 전혀 가늠이 안 됩니다.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연말연초 인생 우선순위 1위를 체력 강화로 바꿨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아이를 위해 준비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신생아 입양은 입양이 아니라, 육아다!
체력 훈련을 위해 매일 조금이라도 달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km를 목표로 했던 때, 3.1절 마라톤 참가모집글을 봤습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의미도 신선했고, 마침 행사 장소가 집과 가까워 이동거리 부담도 적었습니다. Full, Half, 10km 외에 5km 마라톤 신청도 가능했습니다. 부담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행사일까지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 압박스러웠지만, 단기 목표 설정만으로 의미 있겠다 싶었습니다.
꾸준히 준비하며 거리를 늘렸습니다. 1일 최대로 길게 뛰어본 경험은 2km였습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마라톤 5km를 뛸 수는 있을지, 집에 돌아올 수는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3월 1일 마라톤 출전을 7일 앞두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나: 여보, 3.1절 마라톤 준비 안 해요?
남편: 5km는 그냥 뛰면 돼요!
나: ??!!!???!!!!!
마라톤 당일까지도 2km 이상을 뛰어본 적이 없는 상태로 출전했습니다. 날이 많이 풀린 편이었지만, 해가 뜨지 않아 쌀쌀하고 흐린 날이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겉옷을 벗기 망설여지고, 애써 태극기만 힘차게 펄럭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뛰기 위해서요! 구령에 따라 몸풀기를 하면서 이미 완주에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고 기념사진부터 찍었습니다.
5km 시작점 대기 줄에 서서 제자리 뛰기를 이어갔습니다. 추운 날씨에 새끼발가락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코끝은 빨개지고 어깨가 움츠려 들었습니다. 삼일절 태극기 무리에 둘러싸여 심장이 쿵더쿵 떨렸습니다. 힘들면 지금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자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연습할 때는 500m쯤 위기가 찾아왔는데, 현장에서는 여럿이 함께 뛰니 힘든 줄 모르고 뛰었습니다.
2.5km 반환점 사인이 보였을 때, 25km를 뛴 사람처럼 기뻐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반환점을 지난 후 급격히 힘들었습니다. 이미 최고 기록을 넘긴 상태. 주변에 뛰는 참가자 수가 줄었고, 걷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옆에서 페이스를 맞춰 준 남편 덕분에 멈추지 않고 뛰었습니다.
마지막 2km를 남기고 좀 전에 지나온 길을 따라 익숙한 건물이 보였습니다. 이제 정말 코앞이다는 확신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37분에 종점을 통과했습니다. 완주의 기쁨 위로 결과의 놀라움까지 더해졌습니다. 종점을 통과하니 귀가 먹먹하니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 아무래도 마지막에 좀 무리한 것 같긴 해요. ㅎㅎㅎ
남편: 몇 분 걸렸는지가 뭐 중요해요? 그냥 즐기면서 뛰면 그걸로 된 거죠!
나: ??!!!???!!!!!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선수도 아니고, 선두권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왜 저는 이렇게 열심히 달렸을까요? 저는 달리기 위해 마라톤을 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 뛰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래 뛰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뛸 수 있다는 확인, 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육아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입양할 준비가 되었음을,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음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집으로 돌아와 침대 앞에서 이불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먹고 싶었던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치팅데이를 열었습니다. 열흘간 달리기를 멈추고 쉬었습니다. 다리 부종, 골반 근육통으로 엉거주춤 걷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습니다. 내 몸과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러닝머신에 올랐습니다. 목표거리 2km를 세팅하고 달렸습니다. 500m 고비가 살짝 찾아왔지만, 이후 전보다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졌습니다. 마라톤 5km 경험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요!
마라톤 대회 참가로 5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1) 중단기 목표 설정은 성장을 촉진한다.
(2) 함께 하는 힘은 역시 위대하다.
(3) 나와 함께 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4) 체력과 지구력은 꾸준히 달리면 올릴 수 있다.
(5) 육아가 장거리 달리기라면, 체력과 인내, 나를 돌보며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모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