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탈리아 여행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껴 사랑의 감정을 키우다 보면 기쁘다가도 화가 나고, 슬프다가도 금세 즐거워진다. 연애의 과정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달까. 그리고 그 인생 속의 나는 선택의 길을 걸어가는 여행자 같아 보인다. #연애, #유럽여행, #해외 살이 단어 세 개를 이어 썼을 뿐인데 괜스레 설렌다. 2020년의 가을, 나는 선선한 가을바람 때문에 몸이 떨리는지 몽글몽글한 감정 덕분에 몸이 떨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일상을 보냈다.
나의 낭만의 대상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패션회사에서 근무하는 3살 어린 남자였다. 내가 영어 공부를 하러 한국을 떠나 몰타에 온 것처럼 그는 디즈니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영어 공부를 했다.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공부하려고 만난 관계는 어느새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모국어와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집은 꼬모 호수 근처였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표현력이 참 풍부했다. 이탈리아 정규 교육과정에는 '로맨틱하게 말하기'수업이 필수로 들어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해 준 칭찬이 인상 깊었다. "얼굴이 작아, 눈은 크네, 또 코랑 입은 작아."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칭찬치고는 빤히 바라보던 눈빛이 사랑스러웠고 기분이 마냥 좋기에는 빙빙 둘러 표현했다. 나는 어학원 방학 기간에 맞춰서 그가 있는 밀라노로 갔다. 밀라노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는 내내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밀라노로 간 첫날에 손을 잡고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는지 물어봤다. luna와 stella는 그날 유독 더 반짝였다. 그는 휴가 기간이 아니었으므로 오전에는 나 혼자 밀라노 시내 구경을 했다. 지하철을 타면 더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굳이 트램을 기다려서 탔다. 덜컹거리며 가는 트램을 타고 내겐 낯선 건물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또 트램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구경했다. 3대 패션쇼가 열리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누가 봐도 모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멋쟁이들도 많았다.
한 번은 혼자 카페에 가서 저녁에 함께 갈 한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옆 자리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을 걸었고, 감사하게도 한식당을 추천받았다. 그날 저녁 함께 한식당에 갔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셰프님이 나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말을 걸었고, 나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직원분에게 한국말로 주문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황해서 웃음이 터진 나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어로 주문을 완료했다. 영어로 대화를 하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함께 밀라노와 피렌체 여행을 하면서 한식, 일식, 양식 모두 먹었지만, 내가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이러니하게 그 흔한 피자를 함께 먹은 적이 없다. 하지만, 커피는 매일 함께 마셨다. 여유가 있는 날은 그가 출근하기 전에 함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나와 달리 그는 항상 크로와상을 커피와 함께 먹었다. 라테를 두 손에 쥐고 먹는 나와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는 그를 번갈아보며 이탈리아인은 다르구나 싶었다.
주말에는 함께 기차를 타고 피렌체에 다녀왔다.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서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며 한국 드라마인 '사랑의 불시착'을 봤다. 재밌게 보는 도중에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사랑이 나와 그의 미래와 겹쳐 보였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는 피렌체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맛있는 밥도 함께 먹고, 쇼핑도 함께 하고, 간식도 함께 먹었다. 그는 쉬지 않고 내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피렌체의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날의 분위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모국어로 연애를 해도 한순간에 오해가 깊어지고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은데 외국인과 연애를 한다는 건 낭만과 절망이 함께 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상황이 심해져서 오도 갈 수 없게 되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의 답답함은 슬픔보다 깊었다. 보통의 나는 쿨하거나 덜 사랑해서가 아닌 관계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이 없어 이별 후유증이 크지 않은 편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직 주고받을 마음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다시 볼 수 없음이 너무 아팠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상황을 이겨내기에 부족한 애정의 깊이가 마음을 콕콕 찔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렇게 무덤덤하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장면까지 곰곰이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는 걸 보니 시간이 약이라는 흔한 말은 만병통치약이었다. 언제 다시 이탈리아에 갈지 모르지만, 내게 이탈리아는 그의 나라였고, 그의 나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