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신 Aug 27. 2022

가을에 유럽 여행이라니

27. 포르투갈 여행 & 베를린 여행

  내게 여행은 취미이자, 특기이자, 습관 같은 존재이다. 직업 특성상 1년에 두 번, 긴 휴가가 있어서 그동안 30개에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떠날 수 있는 계절은 늘 한여름 아니면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몰타에 1년 동안 살게 되면서 가을 유럽 여행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2020년 가을에 포르투갈과 베를린을 다녀왔다. 포르투갈은 혼자, 베를린은 옆집 호주 언니와 함께 다녀왔다. 포르투갈에 머물 수 있는 날이 고작 3일뿐이라 포르투와 리스본 중 어느 도시에 가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좀 더 아기자기한 포르투로 최종 목적지를 정한 후,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철도 직원이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남자를 가리키며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했다. 치안이 좋은 몰타에서 살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여기는 소매치기가 많은 유럽이었다. 기내용 캐리어를 다리사이에 꼭 끼우고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로 두리번거리다 보니 시내에 도착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객실 창문 너머로 포르투의 아름다운 풍경이 액자처럼 걸려있는 곳이었다. 풍경에 황홀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짐을 정리하려고 캐리어 비번을 눌렀는데 '어? 왜 안 열리지?' 분명 외우기 쉽도록 나에게 의미가 있는 번호로 설정했는데 000부터 999까지 눌러야 하는 상황에 놓이다니, 한 반쯤 시도를 했을까. 어느새 해가 졌다. 4자리 번호키가 아닌 것에 감사하며 수십 번 더 시도한 끝에 비밀번호를 찾아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걸어서 번화가까지 갔다. 번화가까지 가는 길에 다리를 지나가는데 지대가 높고 낮음이 뚜렷하다 보니 다리 밑이 더욱 아찔하게 느껴졌다. 고소 선호증(?) 있는 나는 천천히 걸으며  짜릿함을 즐겼다. 번화가에 도착해서는 사람 구경, 건물 구경을 실컷 했다. 일상에서는 사람들을 관찰하지 않는데 여행만 오면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생긴다.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리며 시선을 뺏기다 보니 허기가 졌다. 눈앞에 보이는 맥도널드로 향했는데  흔한 맥도널드마저도 유럽식 건물로 고풍스럽게 꾸며놓았다. 테라스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데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껏 혼자 여행, 친구와 여행, 연인과 여행, 가족과 여행을 골고루 해봤다. 혼자 여행을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그래서 혼자 떠나면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시간을 보내고, 필요할  현지인이나 동행을 구해 다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몰타에서는 혼자 살다 보니 혼자 하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여행에서의 외로움), 지금 현재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 들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강가로 향했다. 나와 같은 여행객, 연인들, 친구들이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고 버스킹 공연이 배경음악을 담당하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밀라노에 가서 트램을 탔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르투에서도 어김없이 트램에 올라탔다. 그런데 문제는 표를 끊고 타자마자 종점에 도착했다. 그래서 반대쪽 종점으로 다시 출발했다. 혼자 여행을 하니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있었다. 포르투에서 트램을 타며 풍경을 감상하며 내리고 싶은 지역에 내려서 정말 즉흥적으로 걷다가 아이쇼핑도 하고 사람들 구경도 했다.

  다음 날에는 바다를 보러 갔다. 몰타에서도 실컷 볼 수 있는 바다이지만, 지중해와 달리 대서양은 또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서 모닝커피를 하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봤는데 너무 보기 좋았다. 함께 많은 것을 경험하며 변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한 달 뒤, 여전히 가을이었다. 옆집 호주 언니와 함께 베를린에 다녀왔다. 도착하자마자, 독일의 족발인 슈바인학센을 먹으러 갔다. 술을 잘 마시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이래서 다들 독일 맥주, 독일 맥주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거의 없던 베를린은 너무 조용했다. 그래서 길거리를 걷는데 발자국 소리, 언니와 나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베를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나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보이는 홀로코스트였다. 과거의 잘못을 덮어두기보다는 솔직하게 뉘우치고,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조형물을 만들어 기리는 것. 홀로코스트 안에 들어간 나는 내가 겪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이 아려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베를린에 왔으니 유럽식(?)으로 브런치를 자주 먹자고 다짐했지만, 이민자가 많아서 그런지 다양한 음식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인생 쌀국수를 베를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한 번은 편집샵으로 향하던 길에 앉아서 터키 디저트를 먹고 있었는데 인종차별을 당했다. 너무 달콤한 디저트 때문에 감겼던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짧은 그 기억 때문에 베를린 여행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다. 몰타에서의 삶이 너무 좋지만, 문화 생활면에서 너무 아쉬웠다. 평소에 음악 공연이나 미술 전시회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몰타에서는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를린에 와서 라이브 펍에도 가고 여러 작품들도 감상했다.

  여행이 주는 일상의 환기는 너무 매력적이다.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던 익숙했던 하루가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여유롭게 흘러가는 하루가 되니 아니 좋을 수가. 언제 또 가을에 한국이 아닌 곳을 여행할 수 있을까.

이전 27화 얼굴이 작아, 눈은 크네, 또 코랑 입은 작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