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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Aug 28. 2022

영어로 스페인어를 배웠고, 0개 국어를 합니다.

28. 스페인어 배우기

  초등학생 때부터 배운 영어를 기대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결심한 유학길이었다. 그리고 유학을 오기 전 혼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공부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에는 세 마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러 온 곳에서 남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나처럼 장기 유학을 온 친구들의 대부분은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스페인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심지어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친구들, 이탈리아어를 쓰는 친구들도 모국어와의 유사성 때문에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늘 나를 배려해서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영어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답답함이 찾아올 때쯤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그때 내 귀에 들려오는 스페인어들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추진력만큼은 자신 있는 나는 나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줄 친구를 찾았고, 나의 친구 안드레아스는 나의 첫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었다.


  

  필리핀과 중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나의 친구 안드레아스는 첫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그녀의 열정에 나의 의욕이 합쳐지니 이번에는 뭔가 그럴듯한 성과를 낼 것 같았다. 첫 수업은 모든 언어 수업이 그렇듯 간단한 인사말과 감사 표현, 자기소개였다. 한국어에도 사투리가 있듯이 같은 스페인어를 쓰더라도 국가별로 쓰는 언어나 억양이 다르다고 했다. 내가 배운 스페인어는 정확히 말해 콜롬비아식 스페인어였던 셈이다. 근데 여기서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것은 살짝 배운 이탈리아어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물이 되었다. 이유인즉슨 두 언어는 비슷한 말들이 많았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제3의 언어를 창조하게끔 했다.

  가령  '고맙습니다'는 스페인어로'그라시아스', 이탈리아어로는 '그라찌에'이다. 'How are you'는 스페인어로 '꼬모 에스타스', 이탈리아어로는  '꼬메 바'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꼬모 바, 꼬메 에스 타스 같은 국적 잃은 문장을 구사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남미 친구들은 이런 실수마저도 귀엽게 봐주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혀를 굴리는 'R'발음이 안된다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한국어는 모두 'ㄹ'발음이 나니 'L'과 'R'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스페인어에서도 'R'이 문제라니, 한 번은 친구들과 트레킹을 가다가 길거리에 있는 개를 보고 저기 'perro(개)'가 있다고 했더니 친구가 네가 말하는 건 'perro(개)'가 아니라 'pero(하지만)'야.라는 말을 들었다. 영어가 공용어이길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생소함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남성 명사, 여성 명사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실 이해가 안 되기보다 나름의 규칙이 있지만, 외워야 할 단어가 두 배라는 압박감이 이유였다. 하지만, 스페인어 억양은 그 단점을 커버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언어가 춤 같달까? 뭔가 몸짓을 하며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언어였다.

  몰타에 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던 것이 최대한 한국어를 쓰지 않는 환경 속에서 일상을 보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보기보다는 외국인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다. 한마디라도 영어로 대화를 더 하고 그러다 보니 스페인어까지 배우게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국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물론 영어나 스페인어로도 모른다. 이러다가 모국어까지 잊어 0개 국어자가 되는 것인가? 하며 실소가 터졌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을 통해 문화를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매력적이 스페인어 억양 덕분에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니 스페인어로 된 음악, 영화 등의 문화에 관심이 갔다. 나의 조그마한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며 웃음 짓는 친구들을 보니 외국인이 나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올 때, 신난 나의 리액션이 생각났다. 한편 나는 한국에서 살 때는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일 뿐이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들었다.

  인생이란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다. 몰타에서 지낼 때만 해도 베트남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베트남에 살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고,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언어에 대한 관심만큼 타고난 능력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다음에 배우게 될 언어는 어느 나라의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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