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처증 아빠
뚤루루루루, 뚤루루루루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기를 들어 올리는 아빠. 엄마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목소리를 확인해야만 전화를 멈추었다. 어린 내가 보았던 아빠의 모습은 불안 그 자체였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손톱을 물어뜯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흡연장소는 베란다였는데, 담배연기가 집안으로 들어와 항상 나를 괴롭게 했다. 줄 담배를 피우고 나서 겨우 진정이 된 건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잠자는 자세는 항상 손을 이마에 올린 채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지 이마를 꾹 누르고 있는 자세였다.
저녁에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아빠가 본격적인 거대한 굉음을 준비한다. 어디에 있었냐, 뭐 하다가 이제 들어왔냐, 왜 전화를 제때 받지 않는 것이냐 폭풍 질문이 쏟아진다. 질문을 가장한 언어폭력이었다. 지칠 때로 지친 엄마는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고 되묻고, 일하다 왔지 어디서 왔냐, 일하는데 전화를 어떻게 받는 것이냐, 회사에 직원들 보기에 너무 창피하다 이러지 좀 말아라. 매일 반복되는 다툼에 아빠 엄마의 말을 외워버릴 정도였다.
한 날은 이런 적도 있었다. 작은 아빠가 엄마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꽃바구니를 선물한 적이 있다. 빨간색 장미였는데, 장미가 형태도 없이 사라졌다. 아빠는 자신의 남동생을 밖으로 내 쫓아버리고, 베란다로 나가 소리쳤다. 나는 놀라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작은 아빠는 아주 힘없이 돌아갔다. 그날 아빠는 칼을 집어 들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칼부림의 시작이.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나를 헤치지는 않았다. 그 칼의 끝은 엄마를 향해 있었다.
아빠는 목소리가 큰 것 뿐만아니라 성대의 울림도 상당했다. 목소리의 장점을 생각해 성악을 했다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르겠다. 한번 소리를 내면 동네가 울릴 정도였다. 평상시 목소리도 큰데, 흥분해서 칼춤을 출 때는 거의 탱크 같은 소리가 났다. 그 큰 소리에 늘 엄마는 악으로 맞대응을 하였다. 엄마도 그 소리를 이기려고 있는 목청을 최대한 내 지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에는 늘 핏대가 선명하게 서있었다.
난 늘 구석에 숨어있어야만 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갓난아이 둘을 끌어안고 장롱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내가 하지 못한 것이 있다. 112에 신고하는 일이다. 수화기를 들고 숫자까지 눌렀는데 그다음에 말을 하지 못하고 끊어버렸다. 어린 나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신고를 하면 아빠가 끌려갈 것이라는 것을. 그동안은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면 집에는 아빠가 있어서 우리를 지켜줬는데, 신고를 하면 아빠가 없어지고 나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혼자 있어야 한다. 나는 혼자되기가 싫어 신고하지 못했다. 어린 나는 극강의 이기심을 발휘했다. 지금도 마음의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가 신고를 했더라면 나는 다음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엄마는 나중에 내게 말을 해주었다. 너희 아빠는 그래도 네가 5살 이전까지는 정말 잘했으며, 그 누구보다 너를 소중히 여겼다고. 옆집에는 비슷한 또래의 언니가 살고 있었단다. 나는 종종 그 언니와 어울려 놀았는데, 언니는 굉장히 질투가 많았단다.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족족히 뺏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은 같이 피아노를 치는데 내 손을 탁 치고 밀쳐서 내가 울었단다. 속상한 엄마가 아빠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다음 날 그랜드피아노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뺏기자 아빠는 그날 바로 방문에 그네를 설치했다. 놀랍게도 나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아노라던지 그네는 어릴 적 사진에 그대로 있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를 아꼈던 아빠는 왜 저렇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