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큰 냄비에 곰탕을 잔뜩 끓여 놓고는 내게 말했다. 평상시와 똑같았으니까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장을 보러 가나, 잠깐 어딜 나가나. 일말의 의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 때문인지 집을 나선 엄마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갔다 온다는 엄마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룻밤을 잤는데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7번을 잤는데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 무렵 아빠는 굉장히 난폭해져 있었다. 불안해 보였고, 항상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끊임없이 전화를 해댔다. 8번째 날에 아빠는 찾았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옷을 입으라고 했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할머니와 함께 아빠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일주일만의 외출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아빠와 할머니의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눈치를 보고 할머니 무릎에서 조용히 있었다.
도착한 곳은 우리 동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병원이었다. 하필 그날은 날씨가 무진장 좋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피부가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러붙어 앙상한 장작나무 같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볕이 그림자를 만들어 뼈가 더욱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 앙상한 뼈는 엄마였다. 하얀 병실에 하얀 침구에 밀가루를 뒤집어써도 이렇게는 하얗지 않겠다 싶은 사람이 누워있는데,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멍해졌다. 엄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힘조차 없으니 니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해라 하는 얼굴.
놀랍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단지 보호자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 종종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곳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 민들레였다. 할머니는 민들레 꽃과 꽃대를 정리하고 뿌리와 잎사귀를 데쳐왔다. 민들레의 맛은 참으로 쌉쌀했고 약간은 달큼하기도 했다. 초고추장에 찍어서 줬는데 꽤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민들레 나물을 해온 것을 보아 그 시기는 봄이었겠다.
이 사건이 내가 가족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쳐 나의 우울증 같은 경우에는 불안장애가 중심이다. 당시 어린 나는 보호자가 없어지는 바람에 불안을 심각하게 겪었다. 매일이 초조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동생들과 버려졌다는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나는 내 동생들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언젠가는 나 혼자가 되어도 괜찮아야 한다는 생각. 엄마가 오지 않는 밤에 온갖 생각들을 했었다. 엄마를 병원에서 보았을 때 책임감이 강하고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는 언제든지 우리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떠나게 만드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지배했다.
당시 아빠는 지역 모든 흥신소에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아 줄 것을 의뢰했다. 어떠한 곳도 아닌 옆 동네 병원에서 엄마를 찾은 것은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집을 나가 수면제를 하나씩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죽을 수 있겠다 생각한 수면제 양이 만들어지자 모텔방을 빌려 수면제를 먹고 그 곳에서 그대로 죽으려고 했다. 며칠이 지나도 엄마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모텔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신고를 한 것이다. 병원에 이송된 엄마는 위세척을 하고 깨어났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었는데 꿈에서 자신을 키워준 증조할머니가 너는 아직 올 때가 안 됐다며 돌아가라고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놀라서 깼을 때는 이미 병원이었다고 한다. 어른이 된 이후에 엄마에게 자살시도 사건을 기억하고 있고, 불안증세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대답은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으니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대체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어린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