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오래된 사진첩이 하나 있다. 이사준비를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첩을 펼쳐보았다. 아빠와 엄마의 신혼 때 사진들이 꽂혀있었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보니 참 새삼스러웠다. 나이키 신발에 청청패션을 구가했던 그녀는 패셔니스타였다. 지금 홍대에 걸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패션을 하고 있었다. 양말 색깔 센스라든지 한쪽 팔을 자연스럽게 접어 올린다든지 핀터레스트의 패션 참고용 사진으로 나올 법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옆에 아빠가 없다. 독사진은 그러려니 하는데, 같이 찍은 사진에 아빠는 잘려 나가 있었다. 그 사진첩 모든 사진에 아빠는 도려졌다.
악몽을 꾸면 늘 아빠가 나왔다. 어떤 꿈에서는 멀쩡하게 나오기도 하고 어떤 꿈에서는 아픈 상태로 나와 나를 괴롭혔다. 한날은 엄마에게 꿈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도 늘 악몽만 꾸면 너희 아빠가 나온다며 하소연을 했다. 항상 개미굴 같은 할머니집에서 아빠와 할머니가 괴롭히는 꿈을 꾼다고 한다. 꿈에서라도 소리 지르고 화내고 싶은데, 어쩜 현실 반영이 그대로 되는지 한마디도 못하고 깬다고 한다.
아빠를 요양병원에 입소시키고 엄마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다. '너희 아빠 제발 적당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어. 너랑 동생들도 결혼해야 되는데 아픈 아빠가 있으면 걸림돌 되잖아. 끝까지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 엄마는 단 한 번도 남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너희 아빠'가 그를 지칭하는 정확한 명사였다. 자신에게서는 정확하게 분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그런 엄마도 아빠의 죽음 앞에서는 자애로워졌다. 화장터에 가면 관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신이 전부 타고 나오는 장면까지 볼 수 있도록 통유리로 되어있다. 그 앞에 유족들이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두 명씩 마주 보고 앉았다. 그곳에서 엄마는 아빠의 지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가 정신이 멀쩡했던 5년의 시간을 회상하는 듯했다.
'나에게 아낌없이 장난감과 자전거, 피아노를 사준 이야기.
아빠의 험난했던 사회생활 이야기.
아빠의 손재주로 돈을 벌었던 이야기.
아빠가 차를 너무도 좋아해서 차 안에서 잠을 잤던 이야기.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데 몰라서 호박목걸이를 사 온 이야기.
임신 때 딸기가 먹고 싶었던 엄마에게 딸기빵을 사 온 이야기.
같이 간 낚시 부부모임에서 토라진 이야기.
모든 경제권은 엄마에게 맡기고 용돈을 타 쓴 아빠 이야기. '
나와 동생들은 묵묵히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간간히 아빠의 충격적인 센스에 놀라기도하고, 애썼던 아빠의 모습에 안쓰러워도 하고, 아빠의 취미 생활에 웃기도 하였다. 엄마의 머릿속에서 아빠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간간이 들어오던 이야기라 덤덤했지만 동생들은 신기한 듯이 경청했다.
납골당에 아빠의 납골함을 안치할 때 엄마는 한마디 했다. '애들 편안하게 해 줘서 고마워. 이제 당신을 용서할게.' 그 후로 엄마의 꿈에는 아빠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가 그래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인이 깨끗하게 죽고 싶어서, 우리들에게 왔고 우리는 많은 노력을 했다고. 아빠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케어받지 못해 심각하게 더럽고, 약물 쇼크로 아무도 못 알아봤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에게 왔을 때는 케어받아 깨끗하고 단정했으며, 그래도 우리를 알아보고 한동안 살았으니까. 3년 동안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우리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사 간 집에는 엄마의 화장대가 처음으로 생겼는데, 그 아래에 우리 어릴 때 사진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맨 끝에 어린 시절 동생들과 아빠가 같이 찍었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엄마에게는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진을 보고 알았다. 엄마는 이제 아빠를 정말 용서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