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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Oct 11. 2023

24. 아들과 딸이 다른 엄마

"자식이 똑같이 예쁘지는 않아, 솔직히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들을 못 낳는 며느리는 시댁에 엄청난 눈치를 보던 때였다.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성공했네, 할 일 다 했네 하는 소리를 들었다. 첫째가 딸일 때는 '그래 맏이는 딸이 좋지'하면서 허허 넘어갔던 할머니가 둘째도 딸이니 내심 아쉬운 소리를 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말이 비수가 된 것 같았다. 둘째 동생을 보러 병원에도 찾아오지 않는 할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막냇동생이 아들로 태어나자 집의 경사가 났다. 우리 장손이 태어났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매우 기쁜 듯보였다. 그렇게 내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남아선호사상이 강력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남자들이 많아 반에는 남자끼리 짝꿍을 하던 때였다. 성공한 테크트리 딸딸 아들이었다. 막내는 온 집안에서 장손으로서 존재만으로도 큰 역할을 했고, 그 덕에 엄마의 체면은 설 수 있었다.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아들은 참으로 엄마의 속을 많이 썩였다. 사랑받지 못하고 큰 아들은 매사 엄마에게 잘못을 물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이 10년을 사춘기로 보냈기 때문에 그 여파는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사춘기 연장선상에 있던 어느 날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엄마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 뒤로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욱 강해져 그런지 은연중에 나와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처참한 심정을 A3사이즈 용지에 빼곡히 4페이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쓴 편지였는데, 그것을 주면 절연을 할 것 같아 아직도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있다. 


국립대만 가능했던 우리 집안에서 서울에 대학교가 가능하다니. 나와 여동생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아들은 엄마에게 서울의 물가에 비례하여 매달 50만 원과 자취방을 제공받았다. 그 당시 참으로 큰돈이었다. 게다가 서울에 바로 자취방을 전세로 구해준 것이 큰 충격이었다. 난 생활비로 20만 원을 벌어서 썼으니까. 엄마의 태도에 적잖이 억울했지만 그녀의 돈이니 애써 모른척했다. 


아들은 순수학문으로 전공을 선택하여 들어갔는데 부전공을 하겠다며 이과, 저과를 살펴보았고 학점을 이수하느라 졸업이 늦어졌다. 하필 다른 부전공도 순수학문을 선택하는 바람에 돈벌이에는 적합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심 '쟤가 졸업하고 뭘 하려고 저러지' 하고 하소연을 했지만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불안은 했지만 아들을 건들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졸업한 아들은 이제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다. 대학원도 전혀 돈벌이와 상관이 없는 전공으로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랬듯이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학계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는 말을 할 줄 알았다. 너무도 쉽게 엄마는 아들의 꿈을 응원했다. '막내가 대학원을 간다고 하네, 스스로 스터디도하고 기특해.'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딸과 아들의 차이가 어디서 나는 걸까.



엄마의 태도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날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어. 자식이라고 다 똑같이 좋지는 않아.' 또 한날은 '아들이 하도 힘들다고 쟁쟁대니까 신경이 많이 쓰이지.' 엄마의 아픈 손가락은 아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사람인데 어떻게 똑같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긴 하다. 그래도 이렇게 티가 많이 날 줄은 몰랐다. 


'아들은 아빠가 없잖아. 동성과 이성이 그래도 다르지.' 엄마의 말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남동생도 동성인 부(父)가 없어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가 늘 나를 설득할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아빠가 없었어. 그리고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없는 것 같아.' 나도 자식인지라 엄마가 그렇게 티를 내면 상처받는다. 


박우란 정신분석상담전문가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딸이 엄마에게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냉소적인 반면 아들이 호소했을 때 훨씬 반응이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을 몇십 년째 겪어오고 있다. 전문가가 말하길 여성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했다고 했다. 여성은 딸을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며, 아들은 타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성의 특성상 내면의 눈이 자신보다는 타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아들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나를 자기와 많이 동일시했던 것 같다. 24살에 결혼한 엄마는 내가 24살이 되던 해에 결혼하면 안 된다고 일 년 내내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는 항상 너는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며 닮았지만 진화되었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랬구나. 엄마는 여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엄마를 이해하는 데에는 강의가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는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식인 나는 여성으로서 다짐을 한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 특히나 남매를 낳는 일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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