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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Oct 14. 2023

0. 나오며

하루하루 나와 가족 간의 일들을 되짚으며, 내 마음속에 있는 일들을 꾹꾹 글 속에 눌러 담았다. 한편을 쓰고 나면 온통 기운이 다 빠졌다. 심장이 지구 멘틀에 닿을 것 같았다. 감정이 침체되고 다운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태풍이 강가의 모레를 뒤집 듯이 온통 헤집어져 올라왔다. 아픈 감정과 슬펐던 일들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쳤다.


고모는 대학생이 된 나를 불러 이야기했다. '네 아빠가 정신이 아픈 건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살면 돼, 그럼 아무도 몰라, 말하는 순간 전부 약점이고 흠이야. 묻어두고 살아 나도 그랬어. 너도 그렇게 살아' 그리고 그 집에 방이 아닌 거실에 얇은 요를 하나 던져줬다. 새벽에 조용히 고모집을 나왔다. 그 뒤로 그녀를 찾지 않았다.


'고모 죄송해요. 고모는 평생 잘 숨기고 사세요. 그래서 당신 남동생 장례식에 오지 않았군요. 저는 아무래도 고모 같은 사람은 아닌 가봐요. 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위로하고 싶어요.'  



사실 이 글을 보는 나의 가족은 저마다 할 이야기가 많겠다.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아빠는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아내한테 인정받고 너희들한테도 아빠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정말 너희 엄마를 사랑했어. 내가 아팠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처음에는 잘 살아보고 싶었어"


엄마는 '내가 너희들을 키우느라 정말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나를 희생하며 버텼어. 죽고 싶었는데 못 죽고 살아왔을 때의 심정을 아니. 그렇지만 너희들만 보면서 견디고 살았어. 나의 전부인 너희들이 항상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어. 아내로서의 삶은 망했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그럭저럭 잘살았어.'


여동생은 '나도 둘째로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랐는데, 위로 언니 있지 아래로 남동생 있지. 샌드위치 자리에서 크는 게 쉬운 줄 알아? 성격이 괜히 좋아진 게 아니야. 미술 시켜준 것 당연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나도 미술 하면서 어렵고 힘들었어. 가족일원으로 내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남동생은 '아빠 없이 자란 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 여자들만 바글거리는 집안에서 나 혼자 남자였어. 친구들은 아빠랑 공 차고 놀 때 나는 아무도 없었잖아. 누나들은 자기들끼리 친한 것 같지. 나는 늘 혼자였어. 덕분에 나도 상처도 많고 외로움도 많이 타. 난 스스로 상담받으면서 이겨내고 있어.'


사실 이 말들은 가족들에게 은연중에 한 마디씩 들었던 말이다. 그래, 다 저마다 힘듦이 있겠지. 상처도 다다르겠지. 그러니까 내가 가족을 선택하지 않았듯이 모두가 가족을 선택한 건 아니니까.



이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기분이 가볍거나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당신에게 가족 이야기를 꺼낸 계기는 어딘가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가족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사람. 부모가 사이가 안 좋은 사람.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 부모 중 한 명 또는 두 명 다 아픈 사람. 부모를 요양 병원에 보낸 사람. 부모가 바빠서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 동생들이 많아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 친구가족이 부러웠던 사람. 동생과의 사이가 안 좋은 사람. 편애를 당해본 사람. 부모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 가족에게 갇혀 나를 돌보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것들이 아직 진행 중인 사람.


이 모든 상황 중에 당신이 겪은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의 사연은 다를지언정 공유하는 감정은 분명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혼자 주저앉아 있을 당신을 위해 글을 썼다. 정말 누군가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하나로. 그리고 어렸던 나에게 지금도 커가는 나에게 위로가 됐으면 해서. 가끔 댓글이 달리는데, 어떤 분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장문으로 써주었다. 나는 그분의 스토리에 격한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도 받았다.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다.


다만, 내 글에 공감을 할 수도 이해조차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아버지 어머니가 잉꼬부부라 출장을 가도, 회의를 가도 아내를 데리고 간다. 나는 친구의 부모님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따로 다니시거나 손을 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당당하였으며, 상처도 크게 받지 않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빠에게 차와 사업지원금을 달라고 스스럼없이 말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연애만 하면 절망했다. 왜냐면 모든 남자가 자기 아빠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너무도 높은 것이기에 현실에서 찾기에는 무리였다. 한 날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친구의 가족사가 너무 어둡고 깊어서 내가 온전히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와 만나지 못할 것 같아.'


가족이 마냥 행복하고 좋으면 또 이런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안타깝게도 부모의 사랑이 넘쳐 자신은 오히려 위험천만한 사랑을 즐기는 모순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가족사를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는 아닐지언정 내가 잘못되었거나 숨겨야 하거나 치부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난 이런 경험을 했기에 나와 같은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불어 내가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감정을 기민하게 살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갑옷의 한 부분을 벗었다.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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