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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Oct 02. 2023

헬스장의 인스타 여신

 핫핑크 그녀

레깅스를 낑낑대며 아래서 위로 입고 목이 늘어난 운동용 반팔티를 위에서 아래로 입는다. 야무지게 양말색도 골라서 신는다. 껍질에 벗겨지고 있는 스타벅스 텀블러와 에어팟을 얼룩덜룩해진 에코백에 넣고 어깨에 툭 걸친다. 피곤함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헬스장에 갈 때마다 나 자신이 뿌듯하고 장하다고 생각한다. 기특하다. 오늘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구나. 잘하고 있어. 


이제 문 밖으로 나가면 반은 한 거야. 


헬스장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을 한다. 내가 오늘만큼은 운동선수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근육에 신경을 집중한다. 이 동작을 하면 이 근육에 힘이 들어가니까 오늘은 이 부위를 중점적으로 해주자. 거울에 비친 나의 근육을 보면서 잘되고 있어 위로한다. 


근육이 하나하나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시원하다가 아니라 아파죽겠다. 

운동도 계속하다 보면 몸이 개운해진다는데, 개뿔. 

매일이 아프고 괴로운데 무슨 소리냐. 적어도 나한테는 아닌갑 보다. 


헬스장에 자주 가다 보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상체에 집중하는 사람, 하체에 집중하는 사람 나눠진다. 그분들을 보면서 오늘도 오셨군, 속으로 혼자서 내적친밀감을 쌓는다. 헬스장에 가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다. 힘든 와중에 귀에 속속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을 때가 있다. 


하루는 깡마른 여자가 한 명 왔다. 못 보던 얼굴이라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추리한 나와는 달리 운동복장이 어찌나 힙한지 눈길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짧은 크롭 후드티에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레깅스를 신고 실버운동백을 들고 나타났다. 무심하게 운동가방을 툭 던지더니 핫핑크 손목보호대, 무릎보호대, 허리보호대를 찼다. 와우...... 너무도 전문적인 그녀의 장비에 감탄했다. 정말 헬스를 오래 했나 보다 생각했다. 


로잉머신을 타는데, 쉭쉭 3번 당기더니 툭 놓고는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응? 뭐 하는 거지. 요가매트로 오더니 전신거울 앞에 선다.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그리고는 요가매트에 앉아 핸드폰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거울로 비친 그녀의 폰에는 인스타가 보였다. 


토토토토도도독 #오운완 #헬스장 #헬스장여신 


속으로 인플루언서인가. 생각했다. 그녀는 곧 근력운동을 하러 내려간 듯했다. 유산소를 마치고 기구를 사용하기 위해 내려가니 그녀가 기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레그프레스 40킬로를 발로 3번 툭 툭 툭 밀더니 내려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안돼서 핫핑크 보호대를 풀더니 뽀송뽀송한 얼굴로 헬스장을 가볍게 나갔다. 


어느 날은 친구를 데려왔다. 친구로 보이는 그녀는 핫핑크 인스타여신의 로잉머신 타는 모습을 10초간 찍어주었다. 다시, 다시를 외치며 동영상을 새로 찍었다. 드디어 마음에 들었는지 친구는 내려가고 핫핑크 그녀는 뿌듯하게 웃음을 지었다. 


새삼스레 알았다. 그녀의 핫핑크 보호대들은 너무나도 새것이었다. 오늘은 어떤 핫한 아이템을 장착하고 올까. 어떤 기구를 타면서 인증샷을 찍을까. 그녀가 헬스장에 오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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