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Oct 25. 2020

길가던 남자가 왜 쳐다보냐고 물었다.

내가 느낀 공포와 궁금증

"지금 저 쳐다보셨죠? 왜 쳐다보신 거예요?"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젊은 남자가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대낮이었지만 길에는 인적이 별로 없어서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몹시 오싹했다.

쳐다보기는 했다. 그의 외모는 아주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호감형이었고 그래서인지 어디서 본듯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아주 빠르게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가 짧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올 때 나는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그에게 내리막길인 그곳을 막 오르려 할 때 몇 초간 눈이 마주친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쳐다보냐니. 나는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극히 정상범주의 찰나 동안 나는 그를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며칠 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충격적인 사건을 기억해냈다.

한 20대 남성의 범행이었다.

누구에게나 내성적이라는 평을 듣는 남자였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어두운 피부에 십 대 시절부터 빨간 여드름 자국이 사라졌던 적이 없는...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고 다른 부분도 딱히 잘난 게 없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그에게 한 번도 칭찬을 해준 적이 없었다. 옹알이와 걸음마만으로도 칭찬을 받아 마땅한 나이에도 그랬다. 구박과 잔소리보다도 무서운 무관심 속에서 그는 자랐다. 자의식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관심이나 주목을 받는다는 느낌은 그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하등 쓸모없는 인간에게 주목할 때, 비난 혹은 비웃음보다 더 나은 것을 받으리라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앞에서 여고생 세명이 다가오고 있다. 목소리가 크고 웃음소리의 피치가 너무 높아서 몹시 귀에 거슬린다. 고개를 들어 그 거슬리는 소리의 출처를 확인하다가 순간, 그는 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목소리를 낮추어 수군대는 말 몇 마디. 그리고 또다시 귀를 때리는 커다란 웃음소리.

그의 심장이 빠르게 방망이질 쳤다. 수치심으로 손이 떨리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

그는 그 여고생들을 따라간다. 그들은 아직도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는 그중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던 여고생이 혼자 남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뒤를 쫓는다. 그 여고생이 혼자 남은 순간, 늘 그에게 수치심만을 주는 세상을 벌하듯 그녀를 벌할 것이다.


인터넷 기사에서는 그가 가격표도 그대로 붙어있던 과도로 여고생의 목과 흉부를 수십 차례 찔렀고 그 여고생은 결국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저 쳐다보셨잖아요. 왜 쳐다보신 거냐고요.”

내 앞에 그 남자는 다시 한번 내 대답을 재촉했다.

“안 봤는데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오늘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없다.

안 봤다는 나의 발뺌에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몇 번 더 같은 질문을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지나쳐갔다.

수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그에게 칼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물어봤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마 열등감과 자존감의 문제였으리라는 추측만이 든다.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저 새끼 눈깔이 이상하구나’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병신 같아서 쳐다보나?’라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

제발 나의 무서운 상상과 끔찍한 인터넷 기사 속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부디 그가 모르는 사람에게 더 이상 위협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단단한 마음으로 살고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부러우면 지는 거'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