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슬픔과 슬픔의 이별
틴더에서 열여덟 번째로 만난 그 남자. 그의 별칭은 18번이었다가, 남자 친구였다가, 우리 오빠였다가, 다시 십팔번 새끼로 바뀌었다. 물론 그가 특별히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사랑이 먼저 끝난 쪽은 아직 끝나지 않은 쪽에게 단지 그 '먼저'라는 이유만으로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친언니는 종종 그를 젠가남이라고 불렀다. 보드게임 젠가를 아는가? 차곡차곡 놓인 나무블록을 아슬아슬하게 아래에서 빼서 위로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 그러다 균형을 무너트리는 블록을 하나 잡아 빼는 순간, 나무블록 전체는 와르르 무너진다.
1월의 춥던 어느 날 그는 내 균형을 무너트리는 하나의 블록이 되어 나를 떠났고,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아침에 더 이상 공원에 나가서 달리지 않았다. 준비하던 자격증 공부를 그만두었다. 읽던 소설책의 내용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더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함께 달렸던 마라톤이 두 번, 자격증 따고 나면 함께 가자던 여행, 다 읽으면 빌려달라던 소설책, 그 외에도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언제나 슬픔과 우울함은 아침에 더 잔인했다. 하루 종일 스스로를 다독여놓고 가까스로 잠에 들면 아침이라는 놈이 다시 한번 현실을 알려준다. "너 그거 꿈 아니야, 현실이야" 침대에서 내려와 엄마나 아빠 혹은 우리 강아지, 눈 마주치는 아무나를 붙잡고 눈물을 짜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지만 그게 언젠데?' 이제 그만 울고 싶었고 슬퍼서 운만큼 답답해서도 울었다. 시간이 약 이래도 그 시간을 미리 끌어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언니 방 침대에 모로 누워 이제 그만 슬프고 싶다고 한숨 쉬듯 말했다. 그때 언니는 달력을 들고 와서 내 얼굴에 내밀었다. "내가 너 언제까지 슬플지 딱 정해줄게. 2월 4일. 이날부터 너는 슬프지 않을 거야, 아주 해~앵복 할 거야" 그날 내 슬픔의 기한을 지정받았다. 그날부터 슬픔이 느껴질때에는 날짜를 셌다. 당장 울음을 멈춰야 한다는 조급함도, 끝없이 슬플 거라는 불안감도 없이, 나의 슬픔은 비로소 사라져 갔다. 그리고 믿지 못할 정도로 2월 4일부터 정말 슬프지 않았다.
한 달 반 만에 아침에 다시 운동복을 챙겨 입고 공원에 나왔다. 조금 느려진 속도와 숨찬 호흡으로 공원을 달리며 생각했다. ‘이별의 슬픔뿐만 아니라 슬픔과의 이별까지도 나는 배웠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에게는 기한을 정해줘야지’ 물론 다시는 무너지는 일없이 굳건히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