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하면 나는 가끔 이불킥을 하지
한동안은 그 생각이 떠오르면 운전을 하다가도 핸들을 부여잡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주로 운전할 때 상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그리고 마치 악귀를 쫒으려는 샤먼처럼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주로 자책의 말들이었다. 흔히 '자다가 발차기할만한 기억'이라 부르는 것 한두 개쯤은 누구나 있지 않은가? 부끄럽지만 이제 그만 자책하고자 그것에 대해 한번 적어보려 한다.
애주가로서 얼굴이 붉어지는 에피소드의 8할은 술을 먹고 저질렀다. 물론 자랑은 아니다. 그날의 사건도 음주상태에서 벌어졌는데, 내가 좋아하는 오빠와 여러명의 지인들이 교대의 어느 술집에 모여 새벽까지 위장에 술을 부었다. 나는 한창 그 오빠와 썸을 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나를 집에 데려다줬고, 집에 가는 택시에서는 손도 잡았으니까.
그 오빠와의 마지막은 우리 집 엘리베이터에서의 기억이었다. 그날 술이 잔뜩 취한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오빠는 나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15층 우리 집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그런데 15층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꺅 소리를 지르면서 닫힘 버튼을 맹렬히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새벽이라 다행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오빠가 다시 15층을 눌러서 나를 내려놓으려고 하면 또 나는 꺅꺅거리며 닫힘 버튼을 눌러서 또다시 1층으로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꺅- 소리를 지르며 오빠의 가슴팍을 퍽퍽 때렸던 기억도 난다. (기억을 잃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마 함께 더 오래 있고 싶다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시도로 그 오빠는 나를 귀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새벽에 엘리베이터 전력낭비를 한 뒤로 그 오빠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 오빠가 여러번 우리 집에 데려다주고 택시에서 손을 잡고, 이것이 썸이라고 느끼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고생은 시작됐다. 술을 좋아하는 그 오빠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술집에 나를 항상 불렀다. (20대 초반도 아니고, 그와 나는 30대였다.) 당연히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은 부족했고, 술과 사람들 속에서 나는 투수에게 신호를 보내는 포수처럼 그와 눈빛만을 주고받으며 이 애매한 관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김칫국인가. 썸은 혼자 타고 있었구나. 엘리베이터에서 그 흉한 광경을 보고 얼마나 우스웠을까. 술 마시러 오라고 부른다고 다 넙죽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바보였다. 내가 순진했다. 내가 병신이지. 잘되길 바라던 썸이 엎어질 때마다, 나는 자책을 했다.
나는 주로 누군가를 좋아하면 바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책할 일인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이성적인 사고가 멈추기도 하고, 자다가 발차기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운전을 하다가 핸들을 뽑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 않나?(아님 말고) 사랑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행동하는 것은 나에게 '물에 젖지 않고 수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과거의 바보 같았던 행동을 가지고 스스로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했던 말랑말랑한 마음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잘될 인연이었다면 바보 멍청이 짓을 하고도 풋풋했던 추억이라며 서로를 귀여워했을 테니까. 잘못된 것은 내 행동보다도 애매한 사이의 헷갈리는 관계, 그 자체였다. 헷갈릴 때마다 나는 뻘짓을 했고, 결국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는 클리셰를 구태여 경험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사랑할 누군가를 찾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괴로웠던 기억들이 가끔 나에게 "으휴 저 과거의 병신" 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럴 때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자책하지 말라고. 그때 그 관계가 잘못되었을 뿐 그렇게 두고두고 자책할 일은 아니지 않냐고.
그저 이제는 사랑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이며 벗어나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