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Jan 09. 2021

결혼은 못하고 연애는 쉬는 중, 문제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문제??

3년 간 남자 친구가 없었던 M에게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있다. 상대는 건너 건너 아는, 아니 사실은 모르는 남자였다. 주선자의 임무는 소개팅 날짜가 잡히는 순간에 일단락되는 것이라서, 친구가 그 얘기를 꺼낼 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좋은 일이 생긴다면 묻지 않아도 들려올 테니.


몇 주가 지나고 나는 M의 집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M을 만났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웬만한 밥값에 버금가는 시즌 한정메뉴를 고르고 M은 빚진 마음을 만회라도 하듯 그것을 계산했다. 나는 문득 이것이 소개팅 주선에 대한 보답인가 싶어서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물었다.


M은 소개팅 이후에 남자를 한번 더 만났고 그 뒤로는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불쾌한 일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애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묻길래 3년이라고 했더니, 그럼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 뭔 개소리냐 이게? 완전 기분 나빠서 나도 못 참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무례하시냐고 했다가 몇 분간 분위기 싸했잖아.


솔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 남자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농담으로 했다고 하기엔 정말 웃기지 않고 기분만 나쁜 질문을. 정말 모르고 한 말인 걸까?


정말 그 사람 말처럼 오랫동안 (혹은 제대로) 연애를 못하는 것이 문제적 인간임을 드러내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 말에 맞다고 동의할만한 사람을 나는 틴더에서 만나본적이 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서른셋, 그는 마흔이었다. 처음에는 만 나이가 적혀있어서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은 몰랐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나는 그와 일요일 저녁에 만났다. 약속 장소인 할리스커피에 5분쯤 일찍 도착해서 혹시 그가 나를 찾지 못할까 봐 들어가지 않고 입구를 서성였다. 곧 저 멀리 그 틴더남과 얼굴형이 비슷한 사람이 걸어왔다. 늦가을의 이른 추위가 무섭기로서니 11월에 롱 패딩이라니, 무엇보다 차려입고 나온 내입장에서는 유쾌한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알은체를 하려고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떡져있는 걸 보니 머리는 감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다가왔고, 내가 그에게 말을 걸려는 찰나에 빠르게 나를 스쳐서 지나갔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패션감각이 보이는 재킷을 입고 나온 그는 마흔이었지만 무척 동안이었다. 나는 그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아주 잘생긴  아니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아마 카페 입구에서 봤던  패딩에 머리가 떡진 남자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겠지.

어릴 때부터 수영을 했다는 그의 어깨는 다부져 보였고 혹시 다니는 피부과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을 만큼 피부가 좋았다. 커피를 사이에 놓고 나누었던 대화도 자연스럽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는 미국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인천에 있는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그와 나는 카페를 나와 태국 식당에 갔다. 팟타이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었고 술은 하지 않았다. 서로의 지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불현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마흔까지 결혼 못했으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의아했다. 양심선언이라도 하듯 그는 묻지 않는 예상 질문에 대답을 했다. 아마 그가 소개팅을 해오면서 숱하게 들었을 그 질문. 전체적으로 멀쩡한데 왜 여자 친구는 없는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는지 묻는 것. 그 질문의 시작은 아마 칭찬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분이 왜 여자 친구가 없으시죠?"

그러나 점점 질문을 받는 사람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해명 아니면 변명이라도 해보라는 추궁처럼 들리는 건 이제 꽤 많아진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떤 문제가 있으신데요?


제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거든요. 힘들면 동굴에 들어가는 스타일이에요. 30대 중반까지는 혼자가 편하기도 했고.. 여자 친구에게서 외롭다는 불평도 많이 들었어요.


자기 객관화가 뛰어난 그의 해설을 듣자마자 나의 경계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동. 굴. 남. 위험인물이다. 개인주의자들에게 상처 받았던 경험을 상기하며 나는 냉정한 태도를 갖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가 이제는 반성하며 달라졌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좀 살아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그렇다고 단번에 그와 나의 만남을 실패라고 낙인찍은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호감형 인간이었고 약간의 희망을 걸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음 주말에도 만나자며 서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고 그는 몹시 드물게 나에게 연락을 했다. 하루에 카톡이 단 하나 오는 걸 보며 나에게 호감이 없거나 정말 개인주의자구나 생각이 될 때쯤, 나는 그에 대한 기대를 아예 놓아버렸다. 한쪽이 아등바등해야 만나는 인연보다 아쉬운 방생이 이제는 더 편해졌으므로.


주말에 만나자고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우리가 연락 패턴부터 맞지 않는 걸 보니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는 나에게 눈물을 쏟는 이모티콘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 뒤로 만나자는 연락이 두 번 더 왔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엔 나한테 냉정하다는 비난까지 하기에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시간낭비 앞에서는 냉정해야죠"라고 쏘아붙이고 더 이상 답변을 듣는 것도 싫어서 차단 버튼을 눌러버렸다. 동굴남이랑은 이제 말도 섞지 않을 것이다.


M이 소개팅에서 들었던 '3년이나 연애를 안 했으면 문제 있는 게 아니냐'는 문장과 마흔 살 동굴남에게 들었던 '마흔까지 결혼 못했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라는 문장은 꽤 한동안 내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어떤 것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 '연애의 실패'가 '문제적 인간의 표식'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발적 솔로와 비혼주의는 예외로 둔다고 쳐도..)


나의 연애는 숱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M처럼 그런 개소리하지 말라고 화를 내야 할지, 마흔 살 동굴남처럼 자기 객관성을 높여 내 안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지 아직도 잘 알 수가 없다.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이미 다 갔어."

서른을 훌쩍 넘어 연애를 시도할 때마다 꽤나 많이 듣는 말. 나도 가끔 생각 없이 말하면서도, 들으면 어쩐지 기분 언짢아지는 이유는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여기 이러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역법적 해석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연애를 하거나 결혼에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문제없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이 만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어릴 땐 그 문제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부딪히며 해결해볼 심적 여유가 있었다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수록 문제없이 퍼즐 조각처럼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을 찾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맞추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다른 건 틀린 게 되고 그래서 문제적 인간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뿐만아니라 누구나 문제적으로 보이는 단점은 있다. 그것을 연애와 결부시킨다면 '아 저런 인간도 연애를 하네?'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쩐지 쓰다 보니 구차한 변명같고 무척 볼품없어보이는 것 같아 초조하다. 근데 나 정말 별다른 문제없고 꽤 괜찮은 사람인데 말이다. 아니 아니 진짜로.


이전 14화 이불킥할때는 '나'말고 '이불'만 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