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데, 개인주의자들을 사랑했고 미워했다.
이차선 도로를 능숙하게 빠져나와 좌측 깜빡이를 켰다. 곧 강변북로를 탈 것이다. 그럼 이내 집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불안한 와중에 드는 짧은 안도감이었다. 낮과 밤을 함께 보냈고, 다시 밝은 대낮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꽤나 긴 데이트. 연인과의 데이트는 언제나 현실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하게 만드는 특수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조바심이라는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렇게나 섹스를 하고서 느끼는 공허함이나, 분수에 넘치는 행복을 안고 불안해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저 피곤함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과 써야 하는 글, 숙제처럼 밀어둔 은행업무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놀러 갔던 놀이공원에서 폐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들은 것처럼.
그날의 일기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날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날은 하루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인지 따지는 것도, 그날의 상대가 누구였는지 따지는 것도 소용없다. 그저 외로움이 병인줄로만 알았다. 일기에는 어쩐지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쓰여있었다. 내일부터는 아주 다른 세상 사람처럼 연락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 같다고도 쓰여있었다. 사랑은 무언가를 소모시키는 일이었던가? 하고 물음표도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의 이유를 알지 못해서 그 일기는 글이 되지 못했다.
나는 함께해야만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들은, 내가 사랑했던 그들은, 모두 나 없는 세상에 돌아가서 나와는 아주 별개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결국엔 그것을 인정하고 아주 잘 받아들이는 척해야 했는데, 왜냐면 더 외로운 쪽이 늘 어리고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각자의 시간은 소중하잖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도 늘 함께하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렇게 이해를 하고자 하면, 스스로 어른스럽고 이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매번 붙잡고 내 쪽으로 당기면 당길수록 반대급부로 멀어진다는 느낌은 어김없이 옅은 우울감을 줬다. 그것이 바로 여자들이 흔히 말하는 연애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그렇게 찾아 헤매면서도, 그 시작에서는 늘 지옥에 떨어지는 상상부터 했던 것도 다 그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늘 멍청하고 용감했다. 스스로가 선인장인 줄 알고 사막에서 막 피어버린 수선화처럼. 스스로를 채근하고 교정해야 했던(그럼에도 결국 교정이 완성된 적이 없었던) 연애는 이따금 마음을 황량하게 했으므로. 모자이크 같은 감정들이 이제 멀어지고 나서야 윤곽이 선명해진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3호선 대화행 지하철 안에서, 광화문을 떠나는 1900번 버스 안에서, 나를 의아하게 했던 옅은 우울감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혼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에게 무겁게 의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한동안 개인주의자를 사랑하며 앓았던 사람이었다. (아니면 그들은 '개인주의자'라는 말 뒤에 숨어서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맞춰갈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했던가.) 그리고 내가 수선화라는 것을, 사막에서 필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술과 사랑에 대해서라면 단언은 피해야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는 사막에서 꽃 피우지 않겠다. 혼자보다 둘이 더 외로운 아픈 사랑은 하지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