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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Oct 12. 2022

차근차근 뒤틀려버린 너에게

대퇴골두에게 자유를..!

지난 주말, 다시 사람들이 모여서 배번호를 달고 서울을 달렸다. 지인들의 인스타를 보니 이제 마라톤 대회도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사진 속 마라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노력이 담긴 메달을 들어 보였다. 상기된 얼굴과 자신감 있는 표정, 그리고 탄탄한 다리... 건강한 골반... 무엇보다 부드러운 대퇴골두... 나는 그것이 가장 부러웠다. 건강한 골반골에 끼워진 대퇴골두의 자유롭고 부드러운 움직임.


왼쪽 골반이 아픈지 어느덧 10개월이 됐다. 나는 처음부터 그 녀석을 단단히 오해했다. ‘아 글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하는 괴팍한 노인네처럼 병원을 안 가고 자가 진단을 했었는데, 진단명은 단순 운동 부족. 그래서 냅다 공원으로 뛰쳐나가서 며칠을 달렸는데, 역시 소용이 없었다. 두 번째 오해는 순순히 현대 의학을 믿고 병원을 간 뒤에 생겼다. 동네병원에서는 실비보험도 안 되는 5만 원짜리 저주파 치료를 주 2회씩 받았다. 영 안 낫는 것 같아서 병원을 서울로 옮겨 보험청구가 되지만 한 번에 10만 원씩 내는 도수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비싼데 효과가 당-근 있겠지?’ 자가 진단과 민간요법을 하던 나는 갑자기 의술의 진보와 도수치료의 과학적 원리를 맹신하기 시작했다. 병원에는 당연히, 당연히 누워있으면 씻은 듯 나아지는 마법의 의술이 있다고 믿었다.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오해와 이해 사이를 완전히 부적절하게 오고 가며 병을 키웠다. 쉬어야 할 때는 몸을 썼고, 근본적인 것을 고쳐야 할 때는 누워만 있었다. 지난달만 해도 그렇다. 여러 차례 비싼 치료로 골반이 조금 나아진 것 같길래, 신난다고 공원에 나가 5킬로를 달렸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엄마를 대동하여 관절 전문 병원으로(세 번째 새로운 병원) 내 진료를 보러 갔다.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 한창 진행될 나이인 엄마를 보며 어디가 아파 왔냐고 해서 나를 무안하게 했다. (어머니는 튼튼하시고.. 접니다..) 내가 아픈 연유를 설명하니 ’ 아픈데 공원을 5킬로???‘라고 놀라서 나를 한번 더 무안하게 했다.


이게 다 급한 성질머리 탓인지도 모른다. 빨리 낫고 싶은데 성질이 급해서 치료를 더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내 골반이 뒤틀리고 대퇴골두에 염증이 생겨서 물이 차는 데는 차근차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차곡차곡 나쁜 자세를 쌓아서 골반을 뒤틀어 놓고는 몇 년 전까지 마라톤에 잘도 참가했었다. 혼자 꾸역꾸역 참아내다가 이제야 골반이 신호를 보내오는데, 주인 놈은 영 참을성이 없다. 아픈데 뛰거나, 교정이 필요할 때는 누워있거나, 나을만하니 다시 달려 나가는 주인노무새끼..


내일은 필라테스에 가는 날이다. 오랜 시간 뒤틀려온 골반을 생각하면 짧긴하지만, 꾸준한 자세 교정을 위해 4개월을 등록했다. 급한 성질머리대로 주로 달리기나 사이클 같은 운동만 했던 내가 정적인 근력운동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어쨌든 해야만 한다. 골반이 참을성을 잃고 영영 내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골반 교정하면, 나도 마라톤 곧 나갈 수 있겠지? 후.. 자중해야겠다. 또 달려 나갔다간 또 병원행이 될 수 있으니, 골반을 고치면서 급한 성격도 같이 고쳐봐야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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